[창간특집]역차별이 ‘초일류 성장판’ 막는다

  • 입력 2006년 3월 31일 03시 01분


미국에 본사를 두고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의 현지 법인은 자산이 6조 원을 넘어도 한국 정부의 출자총액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산이 6조 원을 넘는 국내 대기업 집단 계열사는 출자총액 규제를 받는다.

이 경우 외국기업이 출자 여력이 없는 대기업 계열사를 상대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해도 국내 기업은 방어할 수단이 많지 않다.

국내 모 그룹은 계열사들이 합작투자 형태로 신규 법인을 만들어 앞으로 5년 동안 5000억 원 규모의 정보기술(IT) 관련 사업을 벌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주력 계열사들이 출자한도 25%를 넘어선 상태여서 자금이 있어도 새 사업에 나서기가 어렵다.

‘초일류 기업’을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면서 보수적인 경영을 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데다 투자 의욕을 꺾는 각종 정책 규제도 여전히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분배를 강조하는 최근의 사회 분위기와 반(反)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일부 집단의 목소리도 기업 경영엔 적지 않은 부담이라고 기업인들은 털어놓는다.

○ 국내기업 역차별하는 규제 풀어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같은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을 더 만들려면 무엇보다 국내기업의 발목을 잡는 역차별적인 규제를 없애 줘야 한다고 재계는 지적한다. 상당수 경제전문가도 같은 생각이다.

국경 없는 무한경쟁 시대에서 국내 대기업에 대한 차별적인 규제는 기업할 의욕을 떨어뜨린다.

대표적인 게 경제력 집중 억제를 목표로 한 공정거래법.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상호출자제한 조치는 도입 당시에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지만 갈수록 국내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게 경제계의 목소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국내기업은 공정거래법과 외국인투자촉진법 등 16개 법률에서 33개의 규제를 외국인 투자 기업에 비해 불리하게 적용받고 있다. 출자총액규제뿐 아니라 금융과 토지 이용, 세제 등 다른 분야에서도 국내기업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재계는 주장한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장은 “출자총액제한제도 때문에 기업들이 신규 사업을 벌이려고 해도 당장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또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막기 위해 금융과 산업의 분리 원칙에 따라 국내기업의 금융업 진입을 제한하다 보니 대부분의 은행이 외국자본에 넘어가거나 사실상 ‘국영은행’인 현실도 문제로 지적된다.

수도권 토지 이용과 세금, 고용 측면에서도 국내기업들은 외국기업에 비해 불리하다는 시각이 많다.

○ 기업가 정신 북돋우는 분위기 조성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초일류 기업 탄생에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삼성전자의 우수성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분배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기업을 옥죄는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양금승 전경련 사회협력팀 부장은 “기업의 중요성을 실감한 외국에선 초일류 기업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발 벗고 나서는데 한국에선 아직도 ‘대기업은 나쁜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퍼져 있다”고 염려했다.

물론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느냐 마느냐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몫’이다.

계열사를 통한 불합리한 몸집 부풀리기와 지나친 외형 확장 경쟁을 하면 일류 기업 문턱에 들어서기도 전에 도태될 수밖에 없다.

창업가 정신 하나만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외환위기 과정에서 기업인들이 뼈저리게 느낀 소중한 경험이다.

수익성 높은 경영과 함께 기업에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투명경영을 병행해야 지속 가능한 기업,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재계가 개선을 요구하는 기업 관련 주요 규제
규제내용선진국 동향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 제도자산규모 기준으로 출자와 채무보증 금지사례 없음
출자총액제한 제도순자산의 25% 초과하는 출자 금지사례 없음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 막기 위해 대기업집단 소속 금융기관의 의결권 제한사례 없음
부채비율 규제지주회사 부채비율 100% 규제 사례 없음
지주회사 설립 제약자회사 지분 50% 이상 의무 보유미국, 독일은 제한 없음
부당노동행위 금지사용자에 대해서만 부당노동행위 적용미국은 근로자도 적용
쟁의 기간 중 대체근로 제약쟁의 기간 중 당해 사업과 관련 없는 자의 대체근로 및 신규 채용 금지대체근로 광범위하게 인정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사용자가 지급선진국은 노조 전임자 급여를 노조에서 부담
수도권 공장 신증설 규제 공장 총량제 및 입지 규제영국과 프랑스는 폐지
기업상속세 할증과세기업상속 때 10∼30% 할증과세영국 독일 일본은 30∼50% 감면 또는 면제
자료: 대한상공회의소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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