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 비자금 조성]檢 “압수수색서 굉장한 성과 거둬”

  • 입력 2006년 4월 3일 03시 04분


검찰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비자금 사건이 ‘질적’으로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그룹 차원에서 주도해 수백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단서를 검찰이 포착함에 따라 비자금 사건이 ‘현대차그룹의 로비 의혹’으로 비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후계구도 관련 내부 보고서도=이번 비자금 사건이 질적인 변화를 일으킨 계기는 지난달 26일 검찰의 압수수색이었다.

검찰은 압수수색 직전까지만 해도 내부 제보를 바탕으로 글로비스의 비자금 내용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지만 현대차그룹 비자금 전체에 대한 그림은 없는 상태였다. ‘금융브로커’ 김재록(金在錄·46·구속) 씨가 현대차그룹에서 받은 로비 자금이 글로비스 등에서 조성된 비자금이라는 정도가 검찰이 그리고 있던 그림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압수수색 이후 상황이 변했다. 검찰이 전격적인 대규모 압수수색을 통해 예상외의 성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2일에도 “압수수색에서 굉장한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예상외의 소득은 현대차그룹이 김 씨에게 전달한 로비자금 수십억 원 외에 그룹이 주도해 매년 수십억 원씩 모두 수백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 등이었다. 또 현대차그룹이 계열사에 비자금 조성을 지시 또는 할당한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비자금 조성이 계열사가 아닌 그룹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정황이 될 수 있다.

비자금 관련 자료와 함께 정몽구(鄭夢九) 그룹 회장의 아들 정의선(鄭義宣) 기아차 사장의 후계구도에 대한 내부 보고서도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비자금과 그룹의 후계구도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룹의 로비 사건으로 비화되나=채동욱(蔡東旭)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은 1일 브리핑에서 “비자금은 불법 용도로 쓰이는 기업의 쌈짓돈인데 기업 운영 과정에서 투명하지 않은 비즈니스나 총수들의 개인 용도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검찰은 비자금의 이런 사용처를 수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수사의 최종 방향이 비자금의 사용처를 규명하는 데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누가 주도해 얼마가 조성됐고, 누구에게 어떤 청탁을 하기 위해 전달됐는지 밝히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 비자금 사건이 현대차그룹의 로비 의혹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검찰은 앞으로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정 회장 부자의 관여나 개입이 있었는지와 비자금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밝히는 데 초점을 두고 수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 鄭회장 출국 배경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갑자기 미국으로 출국해 그 배경에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도피성’ 또는 ‘장기 체류 가능성’ 등의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현대차그룹은 “이달 말 착공 예정인 기아차 조지아 주 공장 용지 및 공장 건설 현황을 점검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며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방문을 포함해 사전에 잡혀 있던 일정이며 ‘도피’ 등 다른 의도는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정 회장의 방미에는 조지아 공장 건설 계획을 총괄한 안병모(安秉模) 기아차 해외프로젝트담당 부사장, 이봉재 수행비서가 동행했다는 설명이다. 현대차그룹은 “방문 기간은 1주일 정도이며 이달 27일로 예정된 우드로 윌슨 국제센터상 수상과는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출국에는 그룹 내부의 동요를 가라앉히기 위해 직접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혹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결국 현대차그룹이 밝힌 1주일 후에 귀국하느냐에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게 됐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현대車 수사 어떤 의도-정보 없다”

盧대통령, 경제5단체장과 오찬 “검찰 수사속도 자체판단”

노무현 대통령은 1일 경제5단체장과의 오찬 간담회 자리에서 검찰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수사에 대해 “어떤 의도나 정보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고 이병완(李炳浣) 대통령비서실장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강신호(姜信浩)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경제계에 미치는 파장이 있으니까 수사가 조속히 끝났으면 한다”고 하자 이같이 답변하면서 “검찰도 국가기관으로서 (수사) 속도나 이런 부분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잘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는 것.

이날 청와대 오찬엔 강 회장을 비롯해 손경식(孫京植)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이수영(李秀永)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이희범(李熙範) 한국무역협회장, 김용구(金容九)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이 부부 동반으로 참석했다.

노 대통령이 경제5단체장만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한 것은 현 정부 출범 후 처음이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정권) 초기에 기업 쪽에서는 ‘대통령은 친(親)기업이 아니지 않으냐’고 생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기업에 거리를 둔 적은 없다. 기업이 사회의 핵심이고 일자리를 만드는 원천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계절이 바뀌는 것을 제일 먼저 아는 사람은 기업인들이고 그 다음은 정치인, 제일 늦게 아는 사람이 글 쓰는 사람들이나 학자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과의 수교 당시 상황을 들어 “수교 이전에도 우리 기업인들은 (중국에) 가서 장사하고 있지 않았느냐. 그 뒤에 정치인들도 (수교)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맨 마지막에 글 쓰는 사람들과 학자들이 ‘이대로 가도 되느냐’며 신중론을 폈다”고 덧붙였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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