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이 장관에게 왜 그런 사람을 만나고 다니느냐, 사기꾼이 분명하니 만나지 말라고 여러 차례 말했으나 ‘알았다’고만 대답하고 계속 김 씨를 만나더라.”(재경부 관료 출신 B 씨)
전직 경제 고위관료 중에서도 이 전 부총리가 구속된 김 씨와 가장 각별한 사이라는 증언은 수없이 많다. 둘의 관계를 말할 때면 언제나 이른바 ‘이헌재 사단의 대부’로 불리는 오호수(吳浩洙) 전 증권업협회 회장이 함께 등장하는 것도 똑같다.
그러나 이 전 부총리는 침묵하고 있다. 취재진도 따돌리고 있다.
김 씨와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전직 재경부 장관 중 강봉균(康奉均) 진념(陳稔) 김진표(金振杓) 씨가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할 말이 없는 것일까,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것일까.
○ 김재록은 ‘이헌재의 남자?’
김 씨가 이 전 부총리와 알게 된 것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초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김 씨는 각종 정책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 이 전 부총리의 신뢰를 얻었다.
재경부 출신과 금융계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 씨는 ‘이헌재의 남자’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이 전 부총리와 밀접한 관계였다.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출신인 이종구(李鍾九) 한나라당 의원은 “김 씨는 이 전 부총리의 해외출장 때 동행하기도 했다”며 “당시는 해외에서 ‘딜’이 많을 때였다”고 말했다.
김 씨와 함께 아더앤더슨에서 근무했던 한 회계법인 임원은 “김 씨와 이 전 부총리는 자주 술자리에서 어울렸다”며 “너무 자주 부르니까 술이 약한 김 씨가 안 가려고 핑계거리를 찾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당시 재경부 간부 중에는 김 씨를 의심하면서 이 전 부총리에게 멀리하라고 조언한 사람이 여럿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C 씨는 “여러 사람이 이 전 부총리에게 ‘김 씨를 멀리하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지만 소용없었다”며 “이 때문에 김 씨에게 뭔가 약점을 잡힌 게 아니냐는 말도 나돌았다”고 했다.
김 씨는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인베스투스글로벌 회장에서 물러나면서 후임에 오호수 고문을 앉혔다. 오 씨는 ‘이헌재 사단’에서도 이 전 부총리와 가장 막역한 사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위원회 대변인을 지냈고 이 전 부총리의 측근인 김영재(金映宰) 칸서스자산운용 회장은 “이 전 부총리는 누구든 좋은 아이디어를 주면 다 만난다”며 “최근에도 김 씨가 ‘영양가 있는’ 정보를 많이 물어 날랐다”고 전했다.
![]()
![]() |
○ 이 전 부총리 외부와 연락 끊어
김 씨 사건이 불거진 후 이 전 부총리는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있다. 측근에 따르면 그는 지난주 일본을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김 씨 사건이 불거져 계획을 취소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 전 부총리가 출국금지 조치됐다는 얘기가 한때 나돌았으나 검찰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본보 취재팀은 지난주 내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 전 부총리의 자택 앞에서 새벽까지 기다렸지만 만날 수 없었다. 자택 전화 자동응답기에 메시지를 여러 차례 남겼지만 대답도 없었다. 오 씨도 마찬가지다.
김영재 회장은 “낮에는 친구를 만나고 골프도 치고 평소와 다름없이 지낸다”며 “본인이 적극적으로 해명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는 1일에도 경기 북부지역의 한 골프장에서 지인들과 골프를 치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 길어지는 침묵, 커지는 의문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이 전 부총리를 둘러싼 의혹도 점점 커지고 있다.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만 해도 김 씨가 정부와 민간의 굵직한 용역을 수주하고 인맥을 넓히는 과정에서 이 전 부총리와의 친분을 이용한 게 아니냐는 추측 정도에 머물렀다.
하지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론스타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적으로 실시한 뒤에는 론스타가 2003년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하는 데 김 씨가 관여했고, 이 과정에 이 전 부총리도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게 아니냐는 말이 검찰과 금융계에서 나오고 있다.
사건 초기만 해도 ‘혹시…’ 하는 수준이었지만 이 전 부총리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정말 뭔가 있는 게 아니냐’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