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esign]중국을 디자인한다…홍콩의 어제와 오늘

  • 입력 2006년 4월 3일 06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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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리처럼 말 수 있는 알란 입의 계산기. 대나무로 책을 만든 중국의 죽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사진 제공 홍콩디자인센터
두루마리처럼 말 수 있는 알란 입의 계산기. 대나무로 책을 만든 중국의 죽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사진 제공 홍콩디자인센터
홍콩 디자인 업계에서 지난 10여 년은 격변기였다.

1980년대 이후 줄곧 호황을 맞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고 1999년에는 홍콩의 중국 반환이 이뤄졌다. 홍콩 디자이너들은 이 기간 “지옥과 천당을 모두 경험했다”고 말한다.

1990년대 후반까지 홍콩 디자인의 구호는 ‘East meet west’. 동서양 교차점의 역할에 무게중심을 둔 것이다. 하지만 반환 뒤에는 ‘세계의 공장’ 중국을 디자인하겠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홍콩디자이너협회장을 지낸 알란 입(사진)과 ‘홍콩 디자인센터’의 프리먼 라우 이사장을 통해 홍콩 디자인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본다.

○ 디자이너들 중국으로

사진 제공 알란 입
알란 입은 네덜란드의 필립스에서 활동하다 1990년 귀국해 1000여 개의 상품을 디자인했다. 홍콩 디자이너로는 드물게 자기 이름을 브랜드로 내건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된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 싸구려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제대로 된 디자인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제 홍콩 디자인과 다리를 묶고 뛰는 2인3각 경주를 해야 한다.”

알란 입, 알란 찬 등 홍콩의 유명 디자이너들은 작품 의뢰의 절반가량을 중국 측에서 받고 있다. 경공업 디자인에 주력했던 홍콩은 이제 중국을 발판 삼아 자동차 선박 등 큰 제품 디자인으로도 시선을 옮기고 있다.

제한된 공간에 20세기의 주요 건축물을 집약적으로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 홍콩 건축 디자인의 중국 진출도 활발하다. 세계적인 건축 디자이너 게리 창의 작품은 베이징 등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홍콩에서 유일하게 4년제 산업 디자인 전공을 둔 ‘리궁(理工)’대의 얀타 람 교수는 중국 시장을 디자인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콩 CEO들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국 개방으로 손쉬운 상품 판로가 열리자 디자인을 멀리했다. 경쟁력이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결국 외환위기가 터지자 홍콩 디자인 업계는 암흑기를 맞기도 했다.”

○ 홍콩 디자인의 힘

홍콩 디자인의 혈통은 특이하다. 중국과 서구의 문화가 섞여 있고, 초기에는 일본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홍콩은 오래전부터 교역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지역성(locality)이 강한 디자인은 어려웠다. 디자인 재료의 특수성이 강한 동남아와는 다르다. 홍콩은 지난 100여 년간 역사와 문화에서 어느 나라도 겪지 못한 국제화와 다양성을 경험했다.”

라우 이사장의 말이다. 이 단체는 2004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디자인 경영자상’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홍콩에는 1500개 이상의 디자인 회사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68%는 디자인 수출을 하고 있고, 17%는 해외지사를 두고 있다.

홍콩과 중국 발전을 상징하는 상하이와는 미묘한 경쟁 관계에 있다.

라우 이사장은 “홍콩은 100년 전부터 국제도시였기 때문에 기업의 생존 경쟁이 치열했다”며 “반환 뒤에도 사정이 달라진 것은 없다. 홍콩 디자인 발전은 기업과 지방 정부의 몫이지 중국 중앙 정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콩에 산업 디자인이 도입된 지는 40년, 중국은 20년으로 추산된다. 두 지역에는 아직 10여 년의 기술력 차이가 있다는 게 홍콩 측의 진단이다.

특히 홍콩 디자인의 실용적 관점은 특유의 생명력이 되고 있다.

“디자인은 무엇인가? 나를 포함한 홍콩의 디자이너들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예술품은 작가의 사후 평가를 기다려야 하지만 디자인은 작품이 나온 그 시점에 평가가 내려지는 상품이다.”(알란 입)

홍콩=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중국, 디자인 혁신 바람

공장을 작업실과 공연장으로 개조한 타산즈의 ‘나우 디자인 클럽’. 사진 제공 월간 디자인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에서 ‘디자인드 인 차이나(Designed in China)’로.

세계의 공장을 자부하던 중국은 지난해 충격에 빠졌다. 세계적 조사기관 ‘월드 브랜드 랩’이 발표한 ‘세계 500대 브랜드’에 ‘하이얼(海爾)’ ‘창훙(長虹)’ 등 4개 기업만 포함된 것.

중국 정부는 싸구려 이미지로는 장기적인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며 브랜드 파워의 핵심인 디자인 역량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지난해 중국에 불고 있는 ‘디자인 혁신 바람’을 자체 디자인 개발, 특정 고객을 겨냥한 디자인 특화, 디자인 전문 인력 확보, GM 등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의 디자인 현지화 등 ‘디자인 혁신 4계명’으로 소개했다. 앞의 세 가지는 중국 기업의 최근 핫이슈가 되고 있다.

성공 사례도 있다. 중국 1위 가전업체 하이얼은 120명의 디자이너와 25명의 시장조사 요원을 두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소비자의 기호를 감한 차별적 디자인으로 초대형 세탁기 1만여 대를 팔았다. 중국의 1위 PC 제조업체 ‘레노보’는 2002년부터 디자인 인력을 두 배로 늘렸다. 이 회사는 MP3플레이어와 카메라, 전화기 기능을 갖춘 독특한 스마트폰 모델(ET960)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디자인 공모전 ‘IDEA’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이 잡지는 “중국 기업들의 디자인 열풍은 10년 전 한국 삼성과 비슷하다”며 “삼성이 디자인 개발에 눈을 돌리며 빠르게 성장했듯 중국 기업의 디자인 혁신이 이뤄질 경우 높은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의 대학에서는 디자인 전공을 늘리고 홍콩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 디자인 인력을 수입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약 400개의 교육기관에서 연간 수만 명의 산업 디자이너가 배출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 산업의 성장 속도에 균형을 맞추려면 약 20만 명의 산업 디자이너가 더 필요하다는 조사도 있다.

중국 디자인의 핵심 기지는 상하이와 베이징이다. ‘로이 디자인’ ‘드래건 디자인’ ‘버드 디자인’ 등 상하이를 기반으로 한 전문회사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 당국은 상하이를 ‘디자인 창의 특색 중점 지역’으로 정했다. 2004년 자료에 따르면 디자인, 연구개발, 자문기획 등 ‘창의 산업’이 지역 총생산의 6.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징 타산즈 예술지구는 전위적인 예술가와 실험적인 디자이너의 산실로 유명하다. 1950년대 말 당시 중국 공산당은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기치 아래 이 지역에 전자, 군수 산업과 관련된 대규모 공장들을 세웠다. 베이징 정비로 이 공장들이 빠져나간 뒤 뉴욕의 소호처럼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해 예술촌을 형성하고 있다. 당시 건물 외관과 구호는 그대로 남아 있어 중국 변화의 상징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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