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구는 한산했으나…
겉으로 보기에 은행 대출 창구는 한산했다.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국민은행 대치지점의 대출 창구에는 단 한 명의 고객도 보이지 않았다.
비슷한 시간에 인근의 도곡동 하나은행 매봉지점에는 대출을 취급하는 3개 창구 가운데 1곳에서만 고객이 상담을 하고 있었다.
창구가 한산한 이유는 대출을 새로 받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 고객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강화된 규제를 피해 더 많은 돈을 빌리려면 4일까지 본점에서 대출 승인을 받고 전산 등록까지 마쳐야 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미 아파트 매매 계약은 했지만 잔금 치르는 날짜가 아직 남아 있는데 대출을 미리 받아야 하느냐는 문의가 가장 많았다”고 소개했다.
대책 발표 전에 이미 은행 대출을 받기로 했던 고객들도 대출 일자를 앞당기고 있다.
○ 실수요자에게 직격탄
이번 대출 제한조치의 주요 내용은 기존 담보인정비율(LTV) 규제와 별도로 매년 갚아야 할 원리금을 연소득의 40%로 제한한 것이다.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의 소득을 기준으로 대출 한도를 정하기 때문에 봉급생활자에게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의 한 부동산팀장은 “능력이 안 되는 월급쟁이들은 이제 강남을 쳐다보지도 말라는 조치”라고 말했다.
대기업 입사 10년차인 김모(36·서울 동작구 대방동) 과장은 “아이들 교육이나 재테크를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강남으로 진출하는 게 목표였는데 이제 그 생각을 접었다”고 했다.
이번 조치가 적어도 봉급생활자의 잠재적인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는 있는 셈.
그동안 소득을 줄여서 신고해 온 일부 자영업자와 전문직 종사자들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중은행의 한 프라이빗뱅킹(PB) 팀장은 “집을 2, 3채 갖고 있고 은행 PB센터에서 관리하는 부자들은 이번 조치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며 “오히려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 부동산 값 잡힐까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출을 틀어막는 이번 조치가 단기적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근본적인 부동산 대책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당장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고객들 중에는 주택 공급이 뚜렷하게 늘지 않는다면 현 정부의 임기가 끝나는 2007년까지 기다리자는 심리도 여전하다”고 전했다.
외환은행 정연호 PB팀장은 “정부가 후속대책을 계속 내놓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단기는 물론 중장기 전망도 하기 어렵다”며 “하지만 PB 고객 대부분은 주요 지역 아파트일수록 가치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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