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기조로 급선회=정 회장이 아무런 협의 없이 출국한 것이 검찰을 강경한 입장으로 몰아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번 수사를 하면서 현대차그룹을 배려해 왔다. 검찰은 당초 정 회장 부자를 출국금지할 작정이었으나 사업상 해외 출장이 잦다는 점을 배려해 이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또 현대차그룹을 압수수색하면서 필요한 자료만을 선별했고, 80상자 분량의 압수물도 분석이 끝나는 대로 되돌려 주고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이 극비리에 미국으로 출국하자 검찰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채동욱(蔡東旭)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은 3일 브리핑에서 이전엔 볼 수 없었던 강한 어조로 현대차그룹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검찰 관계자는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운 것 아니냐”며 “정 사장을 출국금지하고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수사에 착수한 것은 정 회장과 현대차그룹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 사장의 주력 계열사 지분 확보가 초점=검찰이 압수수색한 글로비스와 현대오토넷은 정 사장의 경영권 승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삼성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이재용(李在鎔) 상무 등 자녀들이 싸게 사도록 하는 편법을 동원했다면 현대차그룹은 정 사장이 사업을 통해 자금을 모아 주력 계열사의 지분을 늘리는 길을 택했다.
현대차그룹은 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로 돼 있다. 이들 계열사 가운데 한 회사의 지분만 충분히 갖고 있어도 그룹 전체를 장악하게 된다. 2001년부터 추진된 경영권 승계는 정 사장이 기아차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현재 정 사장은 기아차 전체 지분의 2%를 보유하고 있다.
글로비스는 정 사장이 기아차 지분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자금줄이었다. 2001년 설립된 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의 물류사업을 사실상 독점해 매출이 매년 70% 증가하면서 정 사장은 지난해 말 상장 이전까지 배당금과 주식 매각 대금으로 1447억 원을 벌었다. 정 사장은 2004년 11월 글로비스의 지분 24%를 노르웨이 해운업체에 매각해 마련한 1050억 원으로 건설 계열사인 엠코 지분 25%와 기아차 지분 1%를 사기도 했다.
현대오토넷이 올해 2월 글로비스가 지분 30%를 갖고 있던 본텍을 주식 맞교환 방식으로 흡수 합병하면서 본텍의 주식평가액을 높게 책정하는 방법으로 글로비스의 가치를 올렸다는 의혹이 있다. 부당 내부 거래에 따른 배임 혐의 적용이 검토될 수 있는 대목이다.
▽정 회장 출국, 수사에 지장 초래할 수도=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은 1주일 정도의 미국 일정이 끝나면 곧바로 귀국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검찰도 정 회장이 귀국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의 귀국이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이 귀국한다고 밝혔지만 검찰 수사가 현대차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 회장이 어떤 결심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정 회장의 귀국이 지연된다면 비자금 용처나 경영권 승계 구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일부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