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회장 돌연 출국에 ‘강공’ 급선회

  • 입력 2006년 4월 4일 03시 06분


현대오토넷 사무실서울 강남구 역삼동 대공빌딩에 있는 현대오토넷 사무실. 현대오토넷 측은 대검 중수부가 현대차그룹의 현대오토넷 인수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실시한 이후 보도진의 사무실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현대오토넷 사무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대공빌딩에 있는 현대오토넷 사무실. 현대오토넷 측은 대검 중수부가 현대차그룹의 현대오토넷 인수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실시한 이후 보도진의 사무실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2일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 검찰 수사가 현대차그룹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검찰이 3일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鄭義宣) 기아차 사장을 전격 출국금지한 대목에서 현대차그룹과 정 회장 부자에 대한 강경한 수사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강경 기조로 급선회=정 회장이 아무런 협의 없이 출국한 것이 검찰을 강경한 입장으로 몰아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번 수사를 하면서 현대차그룹을 배려해 왔다. 검찰은 당초 정 회장 부자를 출국금지할 작정이었으나 사업상 해외 출장이 잦다는 점을 배려해 이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또 현대차그룹을 압수수색하면서 필요한 자료만을 선별했고, 80상자 분량의 압수물도 분석이 끝나는 대로 되돌려 주고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이 극비리에 미국으로 출국하자 검찰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채동욱(蔡東旭)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은 3일 브리핑에서 이전엔 볼 수 없었던 강한 어조로 현대차그룹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검찰 관계자는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운 것 아니냐”며 “정 사장을 출국금지하고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수사에 착수한 것은 정 회장과 현대차그룹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 사장의 주력 계열사 지분 확보가 초점=검찰이 압수수색한 글로비스와 현대오토넷은 정 사장의 경영권 승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삼성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이재용(李在鎔) 상무 등 자녀들이 싸게 사도록 하는 편법을 동원했다면 현대차그룹은 정 사장이 사업을 통해 자금을 모아 주력 계열사의 지분을 늘리는 길을 택했다.

현대차그룹은 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로 돼 있다. 이들 계열사 가운데 한 회사의 지분만 충분히 갖고 있어도 그룹 전체를 장악하게 된다. 2001년부터 추진된 경영권 승계는 정 사장이 기아차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현재 정 사장은 기아차 전체 지분의 2%를 보유하고 있다.

글로비스는 정 사장이 기아차 지분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자금줄이었다. 2001년 설립된 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의 물류사업을 사실상 독점해 매출이 매년 70% 증가하면서 정 사장은 지난해 말 상장 이전까지 배당금과 주식 매각 대금으로 1447억 원을 벌었다. 정 사장은 2004년 11월 글로비스의 지분 24%를 노르웨이 해운업체에 매각해 마련한 1050억 원으로 건설 계열사인 엠코 지분 25%와 기아차 지분 1%를 사기도 했다.

현대오토넷이 올해 2월 글로비스가 지분 30%를 갖고 있던 본텍을 주식 맞교환 방식으로 흡수 합병하면서 본텍의 주식평가액을 높게 책정하는 방법으로 글로비스의 가치를 올렸다는 의혹이 있다. 부당 내부 거래에 따른 배임 혐의 적용이 검토될 수 있는 대목이다.

▽정 회장 출국, 수사에 지장 초래할 수도=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은 1주일 정도의 미국 일정이 끝나면 곧바로 귀국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검찰도 정 회장이 귀국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의 귀국이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이 귀국한다고 밝혔지만 검찰 수사가 현대차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 회장이 어떤 결심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정 회장의 귀국이 지연된다면 비자금 용처나 경영권 승계 구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일부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