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 재계는 당초 예정된 행사를 취소하거나 규모를 줄이는 등 바짝 숨을 죽이고 있다.
수사의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종잡을 수 없는 데다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마저 출국 금지되는 등 수사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자 ‘튀는 듯한 말과 행동’을 자제하면서 수사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 “절대로 튀면 안 된다”…엎드린 재계
두산그룹은 이달 11일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 비전 선포식을 열기로 했지만 행사를 하반기로 연기했다. 당초에는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1주년을 맞아 대규모 행사를 계획했다.
두산 측은 “현대차 사태로 기업들 사이에 ‘튀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더구나 두산은 오너 일가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전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로 비자금 조성과 관련된 핵심 기업의 하나인 현대오토넷도 지난달 30일로 예정했던 비전 선포식을 취소했다. 지난달 26일 현대차, 글로비스와 함께 검찰 압수수색을 받은 다음 날 언론사에 비전 선포식 초청장을 발송했지만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자 막판에 포기했다.
그룹이 위기에 몰린 급박한 상황에서 대규모 행사를 여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엔 비전 선포식에서 2015년 자동차 전자·전장 부문 세계 5위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 “조심 또 조심…”
다른 기업들도 창립기념일 등 각종 행사를 예년과 달리 조용하게 진행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6일 창립 60주년을 맞았지만 따로 기념식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룹 측은 “올해 2월의 새 기업이미지(CI) 선포식으로 창립 60주년 행사를 대체하기로 했다”며 “두 번씩이나 행사를 열기보다는 그 비용으로 기념품을 마련해 직원들에게 혜택을 주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효성그룹도 올해 6월 창업주인 고(故) 조홍제 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지만 소규모 회고전을 여는 등 차분하게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GS그룹은 지난달 31일 창립 1주년을 맞았지만 따로 행사를 열지 않았으며, LG그룹도 지난달 27일 창립 59주년을 평일과 다름없이 보냈다.
LG그룹 측은 “50주년 등 특별히 의미가 있는 해를 제외하고는 행사를 열지 않는 것이 관례”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GS그룹 측도 “현대차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1주년 행사를 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각종 악재로 어려움을 겪은 두산그룹과 삼성그룹에 이어 재계 서열 2위인 현대차그룹마저 대대적인 검찰 수사를 받자 재계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재계에 각종 악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요란하게 행사를 열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자는 게 기업들의 전반적인 정서”라고 전했다.
재계는 위축된 분위기가 길어지면 결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검찰 수사가 엄정하면서도 가급적 신속하게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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