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 은행 실무 책임자와 매각 자문사 대표가 수억 원의 금품 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나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전관예우인가, 정관계 로비용인가=외환은행은 2003년 8월 엘리어트홀딩스 대표 박순풍(49) 씨와 매각 자문 계약을 했다. 자문료로 무려 12억 원을 책정했다.
5명 안팎을 거느린 소규모 회사에 수조 원대의 매각 자문역을 맡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은행은 박 씨가 외환은행 출신이고, 재직 당시 인수합병(M&A) 팀장으로 근무한 경력을 감안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용준(全用準) 당시 외환은행 경영전략부장과 박 씨는 입행 동기이자 고교 동기동창 사이. 이강원(李康源) 당시 은행장도 박 씨의 고교 선배여서 매각 자문사 선정 자체는 일종의 ‘전관예우’ 차원에서 이뤄진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경영 악화로 매각을 추진하던 외환은행이 실제 매각 과정에서 거의 역할을 하지 않았던 회사에 친분관계만으로 거액의 자문료를 줬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전 씨가 박 씨에게서 자문료 일부를 되돌려 받기 위해 처음부터 과도한 비용을 지급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전 씨가 매각 태스크포스의 실무 책임자일 뿐 최종 결재권자는 아니었다는 점. 은행 고위 관계자가 매각 자문사의 선정이나 자문료의 집행 과정을 몰랐을 리가 없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자문료의 일부가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는 과정에 관여한 정관계 인사를 위한 로비용이나 고위 관계자의 판공비 용도로 마련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엘리어트홀딩스가 매각 자문사로 선정된 2003년 8월부터 10월까지 3개월 동안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가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에 대한 승인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이 돈이 외환은행 고위 관계자에게 전달돼 외환은행이 론스타로 매각되는 과정에 사용된 사실이 드러날 경우 매각 과정의 비리를 밝혀내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채동욱(蔡東旭)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은 “당시 외환은행 고위 관계자에 대해서도 수사를 안 할 수 없다”고 말해 돈의 성격이 은행 고위 관계자와 관련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목받는 외환은행 매각 태스크포스 5인방=전 씨는 외환은행 매각 전후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태스크포스의 핵심 멤버였다.
이강원 당시 은행장을 비롯해 이달용(李達鏞) 부행장, 전 부장, 실무자 2명 등 5명이 태스크포스에 참여했다.
이 행장은 “태스크포스 외에 다른 직원은 외자 유치나 매각 상황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말라”면서 “다른 부서에서 매각 관련 문의가 들어와도 가르쳐 주지 말라”고 지시했다.
사외이사도 외환은행 매각 과정의 진행 상황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한 직후 이 행장은 20만 주, 이달용 부행장은 36만 주, 실무 책임자였던 전 부장은 6만 주의 파격적인 스톡옵션을 받았다.
태스크포스 5인방이 매각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규모의 인센티브라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풀리나=채 기획관은 “수억 원을 받은 전 부장이 태스크포스의 실무 책임자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씨의 금전거래 의혹뿐만 아니라 외환은행 매각 과정 전체로 수사가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전 씨는 이 전 은행장의 지시에 따라 매각에 필요한 서류를 현장에서 챙기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 씨는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부실금융기관 수준으로 낮아진 경위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상세히 알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이 외환은행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 씨를 통해 외환은행 매각 과정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파헤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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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김두영 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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