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검찰은 앞으로 회장 부자의 혐의를 구체적으로 하나씩 확인하는 수순을 밟아 이들을 소환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회사 대표의 진술은 정 회장 횡령 입증의 증거=기업주가 비자금을 조성한 뒤 단순히 보관만 하고 있었다면 횡령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 검찰이 정 회장의 횡령 혐의를 입증하려면 비자금이 어떤 명목으로든 실제 사용됐다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이런 점에서 투자회사들이 현대차그룹에서 비자금을 받아 사용한 것은 정 회장 부자의 사법처리에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검찰은 또 현대차그룹 본사 등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비밀보고서와 현대차그룹 자금담당 임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정 회장의 주도로 비자금이 조성된 단서도 이미 확보했다.
▽부실계열사 재매입 과정에서 업무방해 성립할 수도=현대차그룹 비자금은 정 회장이나 정 회장의 외아들 정의선(鄭義宣) 기아차 사장이 아닌 제3자 명의의 펀드 형태로 투자회사에 흘러갔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정 회장 등이 펀드의 실제 주인이면서도 출처가 비자금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제3자 명의를 이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투자회사는 이 돈의 출처를 숨긴 채 부실기업 인수와 매각 등에 투자해 펀드 자금을 증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현대차그룹이 위아, 본텍, 카스코 등 옛 기아차의 부실계열사를 구조조정을 이유로 매각했다가 투자회사들을 활용해 2001∼2005년 현대차그룹으로 재편입한 인수합병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이 합병이 이뤄진 시기는 정 사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본격화한 때와 일치한다.
투자회사들은 현대차그룹의 비자금이기도 한 투자 자금으로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부실계열사들을 싼값에 사들여 현대차그룹에 비싸게 팔아 투자 자금을 증식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행법상 부실계열사를 판 회사는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매각하는 기업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런데 현대차그룹은 투자회사를 통해 기업 입찰에 참여해 이미 판 회사들을 재인수한 것이다. 검찰은 이 구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정 회장 등에게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비자금의 용처는?=검찰은 비자금의 용처와 관련해 현대차그룹이 2001년 이후 계열사 수를 크게 늘리면서 그룹의 규모를 급격히 확장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01년 18개이던 계열사를 올해 40개사로 늘렸다.
검찰은 현대차그룹의 비자금이 그룹의 외형을 키우는 데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구도가 수사에서 확인된다면 정 회장 부자는 자기 돈은 들이지 않은 채 회사 비자금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거나 이전’한 것이 된다.
검찰은 또 비자금이 정 회장의 현대차 등 그룹 지배권 유지를 위한 유상증자 대금이나 정 사장의 기업 지분 인수 대금으로 쓰였는지 조사 중이다. 비자금이 정관계 로비자금이나 불법 정치자금으로 흘러갔는지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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