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자를 향으로 설득한다(?)’
방향제로 많이 쓰이는 알로에 향은 진짜 알로에에서 나는 냄새일까?
그렇지 않다. 알로에 향은 조향사들이 ‘알로에는 이런 것이다’고 상상해서 만든 냄새라고 한다. 한 생활용품 업체가 청포도에 풀 냄새를 섞어 만든 것이 알로에 향이 됐다는 것.
죽염치약 향도 마찬가지.
“소비자들이 ‘이건 정말 죽염 같다’고 느낄 수 있는 향과 맛을 상상해 만든 겁니다. 제품 이미지를 냄새로 각인시키는 거죠.”(LG생활건강 김 과장)
조향사들은 브랜드 이미지에 맞는 향 하나가 백 마디 미사여구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꼈다’는 광고 문안처럼 한번 기억한 냄새는 잘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장품 생활용품 업체들이 ‘냄새’에 매달리는 이유다. 기능 싸움에 한계를 느낀 업체들이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향에 주목하는 것이다. LG생활건강은 올해 2월 업계 처음으로 향 전문연구소 ‘센 베리 퍼퓸하우스’를 만들었다. 이곳에는 7000여 개의 향이 저장돼 있다.
태평양은 프랑스 미국 등 향료 선진국 전문 업체들과 손잡고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향을 만든다는 전략을 세웠다.
태평양 서형제 향료연구팀장은 “한방화장품 설화수에는 한약 향, 헤라화장품에는 그리스 여신 느낌의 이국적인 꽃향기 등 브랜드별로 다른 향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향에도 유행이 있다고 한다. 향의 유행은 세계 패션을 주도하는 명품(名品) 업체들이 향수를 통해 이끌고 있다.
요즘은 ‘펀(fun)’ 트렌드에 맞게 톡톡 튀고 새콤달콤한 향이 인기라고 한다. 이 때문에 비누에서 치약, 립스틱까지 멜론, 파인애플, 구아바 같은 열대과일 향 신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 조향사는 이공계의 예술가
“어릴 때 심한 감기로 누워 있어도 옆집에서 음식 냄새가 나면 음식 이름을 읊어대곤 했어요.”(애경 조향사 이성숙 대리)
조향사들은 타고난 ‘개 코’를 자랑한다. 냄새 한번 맡고 무슨 향인지 단번에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수천 가지 냄새를 구별할 줄 알아야 향의 조합을 통해 환상적인 향을 찾아낼 수 있다.
조향사들은 화학 지식보다 이미지를 향으로 그려낼 줄 아는 창의성이 더 중요해 ‘이공계의 예술가’로 불린다. 소리로 음악을 만드는 음악가처럼 냄새로 향을 만드는 조향사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불멸의 히트 향수 ‘샤넬 넘버5’를 만든 조향사 어네스트 보 씨는 향 세계의 ‘모차르트’다.
LG생활건강연구소 김 부문장은 “해외 스타 조향사들의 몸값은 상상을 뛰어넘는다”며 “새로운 향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세계 곳곳에서 쇄도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고 귀띔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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