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이달 말 정 회장 부자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를 정할 방침이다.
▽검찰, “인정할 것 인정했다”=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박영수·朴英洙)는 13일 체포한 이정대(李廷大) 현대차 재경본부장과 김승년(金承年) 구매총괄본부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 회장 부자의 비자금 조성 지시 등에 관한 진술을 일부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정 회장의 측근 중 측근인 이, 김 본부장을 주목하는 이유는 두 사람이 어떤 진술을 하느냐에 따라 그룹 최고위층의 사법처리 여부와 수위가 정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본부장은 2003년부터 현대차 재경본부장을 맡으면서 현대차그룹의 자금줄을 쥐고 있었다. 비자금 조성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본부장은 지난해 10월 구매총괄본부장으로 발령 날 때까지 15년 동안 정 회장의 비서에 이어 비서실장을 맡았다.
검찰은 이들을 15일 새벽 귀가시켰다. 한때 검토됐던 구속영장도 청구하지 않았다.
검찰이 두 사람을 그냥 돌려보낸 것은 두 사람에게서 얻고자 했던 ‘대답’을 모두 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검찰 안팎에서는 추측한다.
검찰은 이들을 체포한 뒤 이들이 윗선의 지시 여부 등에 대해 사실대로 진술하면 귀가시키고 이들이 “모두 내가 알아서 한 일이다”고 버티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전략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조사 이후 검찰의 분위기는 밝았다. 채동욱(蔡東旭)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이, 김 본부장이) 조사를 잘 받고 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두 사람이 인정할 것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인정할 것을 인정했다”는 것은 정 회장 부자가 비자금 조성과 사용 등을 지시했다는 진술을 검찰이 확보했다는 뜻이다. 윗선의 개입 여부에 대해 끝내 부인하고 구속 기소된 이주은(李柱銀) 글로비스 사장과는 다르게 진술했다는 것이다.
압수수색에서 정 회장 부자의 지시 또는 개입을 뒷받침할 만한 정황 증거를 확보했지만 수사팀은 이를 뒷받침할 핵심 임원의 진술이 있어야 확실히 기소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검찰 주변에서는 정 회장 부자에 대한 수사가 사실상 결론이 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달 말 정 회장 부자 사법처리=검찰은 정 회장이 17일부터 2박 3일간 중국 방문을 마치고 19일 귀국한 이후 정 회장 부자를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채 기획관은 “현대차그룹 비자금 조성 과정 및 기업 비리와 관련된 부분의 수사는 이달 말까지 마무리할 방침”이라며 “김재록(金在錄·구속 기소) 씨 로비 의혹 등은 현대차 사건을 정리한 뒤 계속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현대차그룹 계열사 위아의 1000억 원대 채권 가운데 205억 원을 탕감해 주는 대가로 김동훈(金東勳·구속)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에게서 현대차그룹 비자금 10억여 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박상배(朴相培) 전 산업은행 부총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성근(李成根) 산은캐피탈 사장도 1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영장이 청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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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鄭회장 측근그룹은 현대정공 출신들… 현직 부회장 9명중 7명 배출
‘왜 전부 현대정공 출신이야?’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출신 인맥이 주목 받고 있다.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대부분 현대정공과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
검찰에 체포됐다 15일 귀가한 현대차 이정대 재경본부장과 김승년 구매총괄본부장은 현대정공 출신이다. 두 사람 모두 고속 승진을 거듭한 정몽구 그룹회장의 측근이다.
현대오토넷과 본텍의 인수합병을 주도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전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이일장(李日長) 현대차 전무도 현대정공에서 일한 바 있다. 현대정공은 1977년 정 회장이 만든 회사.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 경영을 위한 초석을 현대정공에서 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유독 현대정공 출신 임직원에게 애착을 갖는다는 얘기도 적잖이 흘러나왔다.
설영흥(薛榮興) 현대차 중국사업담당 부회장이 현대차그룹과 인연을 맺은 것도 1994년 현대정공 중국사업담당 고문을 맡으면서였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부회장 9명 가운데 설 부회장을 비롯해 김동진(金東晉) 한규환(韓圭煥) 이전갑(李銓甲) 전천수(田千秀) 이용도(李庸度) 김평기(金平基) 부회장 등 모두 7명이 한때 현대정공에 몸담았다. 이 때문에 정 회장이 오랫동안 현대정공 출신들을 중용하면서 비현대정공 출신 인맥의 불만이 ‘내부 제보’로 이어져 검찰 수사의 계기가 됐다는 추측도 나온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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