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1967년 현대자동차 건설 당시 이 저수지를 모두 매립해 공장 용지로 사용하자는 건의를 듣고선 “마르지 않는 이 저수지처럼 현대자동차는 영원히 번창해야 한다”면서 일부를 남겨 두도록 했다. 비록 작은 연못이지만 현대 사람들에게는 큰 저수지인 셈이다. 이 연못의 사연을 알고 있는 대다수의 직원은 현대자동차가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끝없이 도약할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런 현대가 요즘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편법 상속과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점점 정몽구 회장 부자에게로 좁혀 들고 있다.
연초부터 계속된 환율 하락과 고유가라는 악재도 겹쳤다. 매출액(지난해 35조 원)의 70%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회사여서 환율이 떨어지면 엄청난 손해를 앉아서 감수해야 한다. 현대차는 올해 초부터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과장급 이상의 임금을 동결했다. 협력업체에 납품 단가까지 내리도록 했지만 줄어든 수입을 벌충하기란 역부족이다.
또 있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기본급을 9.1%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인상률 8.48%보다 높다. 노조는 시급제에서 호봉제로 임금체계를 전환하고 직무 및 직책수당도 올려 달라고 하는 등 8개항을 별도로 요구했다.
노조는 현재의 단위 기업별 노조를 산별(産別) 노조로 전환하기 위한 투표를 임금 협상이 한창일 것으로 예상되는 6월에 실시할 예정이다. 노조 측은 2003년 6월 같은 안건을 투표에 부쳤지만 부결됐다. 노조 집행부는 “올해도 부결되면 총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있다. 올해도 임금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현대차가 발목이 잡혀 있는 동안 세계의 경쟁사들은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도요타, 닛산 등은 올해 미래형 친환경 차로 불리는 하이브리드카(전기 모터와 휘발유 엔진을 동시에 장착해 경제성을 높이고 배기가스를 줄인 차)의 새 모델을 출시한다. 혼다도 기존 모델을 업그레이드해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현대차는 내년에야 새 모델을 선보일 예정이다.
창사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라는 이번 사태는 전근대적인 경영에 안주해 변화에 둔감했던 현대차의 자업자득이라는 말도 나온다.
현대차는 이번 검찰 수사를 계기로 편법 상속, 비자금 조성 등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불투명한 경영 요인을 모두 털어 내야 한다. 1987년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한 해(1994년)만 빼고는 18년 동안 총 302일간 파업을 벌였던 현대차 노조도 회사의 장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노사가 합심해 세계 정상을 향해 치닫고 있는 도요타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고비용 저효율 경영으로 몰락하는 GM의 길을 걸을 것인가. 결정은 현대차 노사의 몫이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현대자동차 연못’은 넘치기도 하고, 마르기도 할 것이다.울산에서
정재락 사회부 차장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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