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혹 죽음의 전쟁터로 내몰린다고 할지라도 저부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4월 5일)
휴대전화 제조업체 팬택 계열의 주요 임원들은 요즘 최고경영자(CEO)인 박병엽(44) 부회장으로부터 이런 e메일을 하루에도 3, 4통씩 받는다.
e메일 곳곳에 지난해 600억 원의 적자를 낸 데 대한 ‘쓰라린 심정’과 함께 임직원들에게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마음으로 무장해 달라고 주문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
박 부회장은 요즘 임직원들에게 “지금 우리는 전쟁 중”이라고 자주 말한다.
길면 2년, 짧으면 1년 반 안에 세계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대대적으로 정리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노키아, 모토로라, 삼성이 1군(群)이라면 LG, 팬택, 교세라, 소니에릭슨, 벤큐, 콤팔 등은 2군입니다. 과거 수백 개의 자동차 기업이 있었지만 지금은 3, 4개 회사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200개 휴대전화 제조회사 중 지금 살아 있는 1, 2군 메이저급은 12개뿐입니다. 이 가운데 7할이 경쟁에서 탈락할 것입니다.”
박 부회장은 “이들과 목숨을 건 전쟁을 해야 한다”며 전의(戰意)를 다지고 있다.
“휴대전화 사업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거친 폭풍우 속에 휘말려 있습니다. 리더가 정확한 판단을 하고 조직원 모두가 혼연일체가 돼 노를 저어갈 수 있는 강인한 의지, 부단한 노력을 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연평균 66%로 성장해 온 ‘15세짜리 기업’을 이끄는 CEO의 위기감이 절절히 배어 있다.
○ “독선적 직원은 필요 없다”
16일 보낸 e메일에서는 임직원들의 나태한 자세를 질타했다.
그는 “우리 회사엔 소위 실세(實勢)란 없다”고 말을 꺼냈다.
“자신만이 최선이고 최고라는 독선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데 유독 자신만 과거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예전 방식대로 일하면서 면피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야 합니다.”
박 부회장은 “그 누구든, 어떤 학교를 나왔든, 어디 출신이든…. 타사에나 있을 법한 줄 세우기나 줄서기, 무조건 감싸기, 무조건 무시하기…. 이런 것들을 용납하기엔 저는 아직도 총기와 판단이 흐려질 나이가 아닙니다”라고 못 박았다.
○ 골프 끊고 일에 전념, 1분기 흑자 전환
2000년 여름 골프에 입문한 지 6개월 만에 ‘싱글’을 기록한 박 부회장.
주말이면 어김없이 골프장을 찾던 그가 지난해 11월 골프를 끊었다. ‘오너’가 주말에도 꼬박꼬박 출근하자 임원들이 골프장 회원권을 슬슬 반납하기 시작했다.
그는 요즘 점심, 저녁 약속을 외부 사람과 일절 하지 않는다. 대신 서울 여의도 팬택 계열 사옥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임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식사한다.
두문불출하고 회사 일에만 매달린 것이 효과를 봤을까. 팬택 계열은 1분기(1∼3월)에 4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흑자로 돌아섰다.
“새롭고 상큼한 것, 남들과 다른 것이 아니면 소비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고, 세상이 변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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