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 위한 세금늘리기 동의 못해”

  • 입력 2006년 4월 19일 03시 01분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에 대한 심의 및 공론화 작업을 총괄해 온 곽태원(郭泰元) 조세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의 사의 배경을 보면 정부 세제 개편의 목표가 ‘분배를 위한 재원 마련’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곽 위원장은 “조세부담률을 높이려면 성장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세특위 관계자가 전하는 곽 위원장의 사의 표명 배경을 살펴본다.

○ 부동산 세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조세특위에 따르면 지난해 초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서강대 곽 교수에게 특위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 그는 거절했다.

노무현(盧武鉉) 정부와 이른바 ‘코드’가 다르기 때문에 현 정부의 세제를 다루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것.

곽 위원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정부가 부동산 관련 재산세를 무리하게 건드리려 하면 이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의 검토 대상에는 부동산이 빠져 있었다. 부동산 관련 세제는 ‘8·31 부동산 종합대책’에 따라 별도로 다뤄졌기 때문이다.

부동산 세제와 관련해 곽 위원장은 2009년까지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율을 집값의 1% 수준으로 높이는 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예를 들어 공시가격 10억 원짜리 아파트를 가진 A 씨가 있다고 하자. A 씨가 이 아파트로 전세를 놓으면 전세금으로 5억 원가량을 받는다. 연간 이자율이 5%라면 연 2500만 원의 금융소득을 올리는 셈.

그런데 10억 원에 대해 1%의 세율을 적용하면 A 씨는 연간 1000만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A 씨의 실제 수입은 1500만 원(2500만―1000만 원)으로 줄어든다. 물가상승률이 3%를 넘는다면 그만큼도 못 버는 셈.

여기에 양도소득세 중과 조치에 따라 집을 팔면 엄청난 양도세를 내야 한다.

곽 위원장은 “이런 세제는 큰 집을 가진 사람이 한 푼도 벌지 못한 채 작은 집으로 옮겨가라는 뜻”이라며 “고가 주택을 가진 사람이 집을 매물로 내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인들에게 설명했다.

○ 성장잠재력 확충에도 세금 써야

곽 위원장은 또 정부가 재원을 늘리기 위해 세금을 많이 거둘 수는 있지만 이렇게 늘어난 세금을 양극화 해소에만 사용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성장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 재정을 투입하지 않고 조세 부담만 늘리면 장기적으로 경제 전반이 침체될 수 있다는 것.

조세특위 위원 가운데 곽 위원장과 의견이 같은 사람도 있지만 현재 마련된 조세개혁 방안에는 이런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대한상공회의소 이현석(李鉉晳) 조사본부장은 “일하는 저소득층에 현금을 주는 근로소득지원세제 같은 것은 아직 시행하기엔 이르기 때문에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연구개발(R&D) 지원 비율을 대폭 늘려 달라고 했지만 정부 측에선 별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곽 위원장은 조세부담률이 선진국보다 낮다는 정부의 주장에도 반대 의견을 냈다.

정부는 2003년 기준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2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6.3%보다 아주 낮은 수준이라고 홍보해 왔다.

그러나 곽 위원장은 조세부담률을 비교할 때는 국가의 복지 수준과 자본, 노동 등 생산요소의 이동에 영향을 주는 환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 “재정 지출 효율성 높이는 게 우선”

올해 초 곽 위원장이 내놓은 ‘21세기 조세개혁의 여건과 방향’ 보고서에는 세제 개편과 관련한 그의 속내가 잘 드러나 있다.

이 보고서에서 그는 한국 세제의 문제점으로 △과도한 비과세 감면 △부동산 등 자산에 대한 과세 △복잡한 세법 체계 등을 꼽았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재정이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조세개혁의 출발점은 비과세 감면 대상을 줄여 세원을 드러내야 한다는 게 곽 위원장의 주장이다.

2003년 기준 한국 근로자 가운데 근로소득세를 내는 사람의 비율은 51.0%로 미국, 캐나다, 일본 등에 비해 30%포인트가량 낮다. 1995년만 해도 한국의 근로소득세 납부자 비율은 68%를 넘었는데 비과세 감면 대상이 많아지면서 납세자 비율이 뚝 떨어진 것.

곽 위원장은 “소득세가 소득 재분배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조세부담률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복지 관련 지출이 팽창하는 것을 억제하고 공공부문 지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곽 위원장은 한국조세학회장, 공공경제학회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재정경제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총괄분과 및 소비세 분과위원장 직도 맡고 있다. 세제 관련 교재의 원론 격인 ‘조세론’을 저술한 대표적인 세금 전문가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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