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투자자’로 알려질 만큼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리히텐슈타인 씨는 이번 이사회에도 직접 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사회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는 듯 그는 오전 8시경 수행원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키가 작고 까만 곱슬머리를 한 모습이었다. 1시간여 뒤 이사회는 간단한 통성명과 함께 시작됐다.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 브레이크, 또 브레이크…
이사회가 시작되자마자 리히텐슈타인 씨는 다른 이사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엄준호 스틸파트너스 한국 대표의 배석 문제 때문.
그는 “엄 대표와 같이 있고 싶다”고 했지만 곧 반대 의견에 부닥쳤다.
다른 이사들이 “이사가 아닌 사람이 이사회에 배석할 수는 없다”, “그래서 회사에서 통역 서비스도 지원해 주고 있지 않느냐”고 하자 그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정리된 뒤 1분기(1∼3월) 결산보고가 시작됐다. 그는 첫 대면에 부담감을 느꼈는지 시종일관 긴장한 표정으로 회의 자료를 응시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곧이어 두 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통상적인 경영 사항을 경영진이 결정할 수 있도록 위임한 이사회 규정 개정안을 심의하는 순간이었다.
리히텐슈타인 씨는 “경영진에 이런 권한을 위임하지 않아 회사가 어려웠던 사례가 있느냐”면서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따졌다. 표결 결과는 찬성 11표, 반대 1표로 개정안 통과. 이후에도 그의 주장은 번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회사의 사업정책과 성과, 위험요소 등을 검토하는 성과리스크위원회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지만 결국 공익운영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임됐다.
이사회에 참석한 한 이사는 “험악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리히텐슈타인 씨가 사소한 문제를 계속 제기해 많은 시간이 소모됐다”고 전했다.
○ 아이칸 측 공격 재개
이날 이사회는 사외이사 1명으로는 아이칸 측의 경영권 간섭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 줬다. 리히텐슈타인 씨는 사소한 부분에 이의를 제기했을 뿐 그다지 새롭다 할 만한 요구는 하지 않았다.
곽영균 KT&G 사장도 “리히텐슈타인 씨는 이사회 안건 외에 특별한 발언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리히텐슈타인 씨가 직접 이사회에 참석했다는 점은 아이칸 측이 KT&G 경영권 공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아이칸 측의 KT&G 공략 움직임은 지분 확대에서도 나타났다.
스틸파트너스와 제휴한 아이칸 파트너스 측은 이사회가 진행되는 동안 KT&G의 지분 0.62%를 추가로 취득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아이칸 측이 보유한 KT&G 지분은 7.34%로 늘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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