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 “앞이 안보인다”

  • 입력 2006년 4월 24일 03시 01분


빠른 속도로 질주하던 한국 자동차산업에 ‘빨간 불’이 켜졌다.

최근 국제 유가 급등, 달러화 및 엔화에 대한 원화 가치 상승(원화 환율 하락), ‘춘투(春鬪)’를 앞둔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 요구 등으로 국내 자동차 업계의 경영 환경은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한국 자동차산업의 대표 주자인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검찰 수사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한국 차의 대외 이미지와 신인도가 급락할 가능성도 커졌다. 총수 일가의 법적 혐의에 대한 가치 판단과는 별도로 현실적으로 현대차그룹은 한국 자동차산업의 79%(1∼3월 생산 기준)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美수출 한국 5.6%-日 7% 증가

최근 달러당 950원대가 무너진 원-달러 환율, 100엔당 806원대까지 떨어진 원-엔 환율은 한국 차의 미국 및 유럽 시장 수출에 급제동을 걸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한국 자동차의 미국 시장 판매량은 2001년 61만 대에서 지난해 73만 대로 12만 대 늘어났다. 반면 일본 자동차는 같은 기간 457만 대에서 547만 대로 90만 대가 늘어났다. 이 기간 미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이 한국 차가 3.6%에서 4.3%로 0.7%포인트 늘어나는 동안 일본 차는 26.6%에서 32.2%로 5.6%포인트나 올라갔다.

미국 시장에서 일본 차를 따라잡기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한국 차의 가장 큰 장점인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달러당 1024원일 때인 지난해 현대차 베르나(수출명 엑센트)의 미국 시장 판매 가격은 1만2094달러였으나 현재는 1751달러 오른 1만3845달러를 받고 있다.

이에 비해 베르나와 비슷한 사양의 소형차인 일본 도요타 야리스(옛 에코)는 지난해 1만2325달러에서 1만3130달러로 805달러 상승에 그쳤다. 한국 차와 일본 차의 가격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올해 1, 2월 미국 시장에서 한국 차의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6% 늘었으나 일본 차와 유럽 차의 판매량은 각각 7%와 14.5% 증가했다.

수출이 전체 판매의 90%인 GM대우도 환율에 민감하다. GM대우 관계자는 “환율이 더 떨어지면 수익 악화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유가 상승, 임금 협상도 걸림돌

한국 업체들의 고전(苦戰)은 내수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수입차 판매량은 전년보다 32.5%나 늘어났다. 올해는 다시 19.6% 증가할 전망이다.

이전에는 업체별로 이른바 ‘신차(新車)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내수 시장에서 이런 효과가 줄어들고 있다. 수입차 다양화와 소비 심리 위축이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해 자동차 내수 시장이 전년 대비 4.5% 증가에 그치는 등 3년 연속 부진을 보였다”며 “유가 상승이 차량 유지비 부담을 증가시키고 청년실업률,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로 신규 구매가 저조하다”고 분석했다.

노사 갈등도 장애물이다. 현대차 노조는 최근 지난해 요구안 8.48%보다 높은 기본급 9.1%의 임금 인상안을 경영진에 제시해 사측을 당혹스럽게 했다. 기아차는 최근 노조와의 갈등으로 ‘뉴 카렌스’의 생산라인 가동이 중단됐었다.

○‘현대차 사태’의 그늘

현대차그룹은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인 이달 중순 북미 및 유럽지역 수출 목표를 당초보다 각각 10%와 8% 낮췄다. 환율 문제와 그룹 신인도 추락 문제를 고려한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특히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진의 사법 처리에 따라 해외 공장 신규 건설 등의 경영 공백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미국 조지아 주(州)의 기아차 미국 공장 기공식이 무기한 연기됐으며 다음 달로 예정된 현대차 체코 공장 계약식도 차질이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공장 건설이나 신차 개발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에 대해서는 정 회장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경영 공백의 파장이 클 것으로 그룹 안팎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또 현대차그룹 측은 이번 사태로 그룹에 대한 국제 신용평가가 떨어질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현대차의 한 임원은 “해외 사업은 대부분 현지 차입을 원칙으로 하는데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차입금 금리가 올라가 경영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한국 자동차산업 관련 고용 인원은 154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10.4%를 차지하고 있다. 생산액도 75조 원으로 전체 제조업 생산의 11.1%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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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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