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회장 사전영장]“경제 악영향 알지만… 法은 法”

  • 입력 2006년 4월 28일 03시 01분


‘죄를 밝히고, 밝혀진 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다.’

검찰이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1차적인 이유는 정 회장의 범죄가 구속될 만큼 무겁다는 데 있다.

정 회장은 현대차 등 현대차그룹 6개 계열사의 회사 돈 1000억여 원을 비자금으로 조성해 빼돌리는 등 모두 3000억여 원의 손해를 회사에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정 회장이 거대 재벌기업인 현대차그룹의 총수이지만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주식은 정 회장뿐만 아니라 수많은 투자자가 나눠 갖고 있다. 정 회장만의 회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정 회장이 빼돌린 돈도 정 회장 개인 소유가 아닌 회사의 소유인 셈이다.

그런데도 정 회장은 거액의 회사 돈을 마치 쌈짓돈처럼 마음대로 빼내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의 영장청구는 정 회장의 죄질이 좋지 않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횡령한 회사 돈을 외아들인 정의선(鄭義宣) 기아차 사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는 데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주주 소유인 회사를 이용해 개인의 부(富)를 축적하고 아들에게 이전한 것은 남의 재산을 활용해 자신의 배를 불린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검찰은 판단했다.

따라서 검찰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수사를 통해 혐의사실을 밝혔고, 밝혀진 혐의가 중죄에 해당하는 만큼 응분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

정 회장의 혐의가 법원에서 모두 유죄로 인정될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현대차그룹과 재계가 경제위기론을 강하게 제기했지만 검찰은 경제정의가 확립돼야 경제체질도 개선된다는 논리로 맞섰다.

재계는 경제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정 회장을 구속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경제가 좋아지기 위해서 오히려 법의 잣대를 더욱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매를 맞으면 당장은 고통이 따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약’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정 회장이 구속되면 현대차그룹이 일시적으로 혼란을 겪고 경영상 타격을 입을 수 있지만 현대차그룹이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경영 혁신을 이루는 데 정 회장 구속이 긍정적인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27일 정 회장 구속 방침을 발표한 채동욱(蔡東旭)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이 “한국이 1인당 개인소득 2만 달러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신뢰성 확보가 절체절명의 과제”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검찰은 업계의 ‘경제위기론’보다는 상식선에서의 ‘경제정의론’에 비중을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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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父子 동시구속 부담 경영상 애로도 감안”▼

채동욱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27일 브리핑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밝힌 뒤 “검찰은 (대기업) 수사가 국가 경제에 끼칠 영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은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사정의 중추기관이고 수사기관이며 정부 기능의 일환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불구속 수사하려는 이유는….

“부자(父子)를 모두 구속하는 것에 부담이 있다. 현대차그룹의 경영상 애로도 감안했다.”

―현대차 임원진 가운데 추가로 구속영장 청구할 사람이 나올 수 있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 회장의 혐의 중 1000억여 원 횡령이 있는데 그 돈을 정 회장이 모두 썼다는 것인가.

“그렇다. 구체적인 용처는 앞으로 수사한다.”

―혐의 가운데 정 회장과 정 사장이 공모한 부분도 있나.

“일부 있다.”

―배임의 유형이 3, 4가지인가.

“몇 가지 있을 거다. 그래서 구속영장이 길다. (기자들이) 공부를 좀 해야 할 거다.”

―현대차는 정 회장의 회사인가.

“당연히 주주들의 회사다. 그건 주식회사 제도의 기본이다. 정 회장은 대주주로서의 역할만 하는 거다. 회사에 피해를 끼치면 회사의 손해고 이는 주주 전체의 손해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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