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27일, 정몽준 의원이 최대 주주인 현대중공업그룹은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의 핵심인 현대상선의 최대 주주가 됐다. 정 의원은 고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부인인 현 회장의 시동생이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이다. 이를 두고 범현대가의 장자(長子) 역할을 하는 정몽구 회장의 공백기 동안 현대그룹의 경영권 구도에 새로운 밑그림이 그려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 왜 현대상선인가?
현대상선은 현대그룹의 핵심 계열사이자 자금줄이다.
지난해 매출 4조8455억 원으로 그룹 전체 매출(6조6768억 원)의 73%를 차지했고 3864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현대상선은 현대택배(30.11%) 현대아산(36.86%) 현대증권(12.79%) 현대UNI(23%) 등의 최대 주주로 만약 현대상선 경영권을 장악한다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을 통해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온 현대건설 인수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의 최대 주주가 됨으로써 마음대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없게 됐다.
○ 현대중공업의 의도는 뭔가?
현대상선 지분 26.68%를 매입한 현대중공업그룹은 ‘단순투자’와 ‘외국인의 적대적 M&A 위기에 처한 고객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사전 협의도 없이 ‘백기사’가 단번에 최대 주주가 된 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명백한 적대적 M&A”라고 단정하며 “지분 추가 매입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막아내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금강산에서 열리는 윤이상음악제 참석을 위한 방북도 29일로 하루 늦췄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건설 관계자는 “본래 현대그룹의 주인이던 정씨 집안이 현정은의 현대그룹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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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C그룹의 역할은?
KCC그룹에는 아픈 기억이 있다.
고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막내 동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2003년 조카며느리인 현 회장과 현대그룹 경영권을 놓고 다투다 패한 이른바 ‘시숙의 난(亂)’이다.
그 일이 있은 뒤 양측은 앙숙으로 지내왔다. 하지만 KCC그룹은 현대중공업과는 각별한 관계다. 현대중공업 지분 8.15%를 보유하며 ‘백기사’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지분 6.26%를 갖고 있는 KCC가 현대중공업과 연합전선을 펴고 있는 걸로 보인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KCC나 현대중공업이 현대그룹의 모체인 현대건설을 인수하고 힘을 합쳐 현대상선을 접수하면 ‘상황 끝’이다.
하지만 KCC그룹은 이 같은 시나리오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정상영 명예회장의 장남인 정몽진 KCC 회장은 최근 본보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현대건설 인수는 절대로 없다”고 단언할 정도였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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