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정훈]‘합법적 경영권 승계’ 지혜 모을 때

  • 입력 2006년 5월 3일 03시 00분


‘우리 기업도 수사하면 어쩌나….’

요즘 대기업들은 좌불안석이다. 검찰이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칼을 들이댔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인은 ‘뒤지면 나온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대다수 기업에 경영권 승계는 일종의 ‘아킬레스힘줄’이다. ▶본보 2일자 A6면 참조

현실적으로 법으로 정해진 세금을 다 내고 경영권을 자식에게 넘기는 대기업은 흔치 않다. 상당수 기업은 총수 2세가 대주주로 있는 비상장 계열사를 지원하거나 주요 계열사의 주식을 싼값에 배정받도록 해 경영권 승계를 시도해 왔다.

주주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배임행위다. 그래서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거의 모든 대기업은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 탈법, 편법 경영권 승계는 반(反)기업 정서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참여연대는 “순환출자로 얽힌 그룹을 통째로 넘겨주려는 욕심이 편법 상속을 불러 왔다”며 날을 세운다. “세율을 낮춰도 어차피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경영권 승계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가혹한 세제(稅制)가 편법을 부추긴다”고 항변한다. 상속·증여세 부담이 너무 무거워 정상적인 경영권 승계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금을 내고 나면 지분이 절반으로 줄어 경영권이 위협을 받는다.

현 시점에서 ‘법대로’만으로 문제가 풀리진 않는다. 이 문제는 부(富)의 대물림 차원을 떠나 경제의 활력과도 직결된다. 평생 일군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경영권 승계가 쉽게 이뤄지는 쪽으로 세율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하지만 분위기와 여건이 다른 우리가 이 흐름을 무조건 좇기도 어렵다.

따라서 이 문제를 공론화해 적정 수준의 경영권 승계비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관련 제도를 정비해 편법과 불법을 막고 합법적인 경영권 승계의 길을 틔워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물의를 빚고 있지만 기업은 국부(國富)를 창출하는 주역이다. 그래서 이들의 이유 있는 하소연에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업인들이 편법과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박정훈 경제부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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