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고서의 내용이 모두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선 검찰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자금 조성?=국정원 보고서에는 제이유그룹이 협력업체에 줘야 할 물품대금을 몇 개월씩 지연시키거나 외주업체 납품 때 일정 금액을 회사 임원의 차명계좌로 입금시키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만들었다고 나와 있다. 이렇게 조성한 비자금이 2000억 원대에 이른다는 것.
이 비자금은 차명계좌를 통해 모 은행 개인금고에 450억 원을 보관하고 있고, 사채업자인 B 씨와 중간 전주 L 씨가 각각 400억 원과 150억 원을 돈세탁해 관리하고 있다는 게 국정원 보고서의 내용이다.
또한 2003년 중국 베이징(北京)에, 2004년 필리핀에 설립한 2개의 해외 법인을 통해 각각 60억 원과 40억 원의 비자금을 반출했다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제이유그룹의 정대화 고문 변호사는 “은행 개인금고에 450억 원을 보관하고 있다는데 개인금고 자체가 없다”면서 “수백억 원대의 돈을 관리하고 있다는 B 씨도 J 회장과 한때 고소까지 갔을 정도로 사이가 나쁜데 무슨 돈 관리를 했겠느냐”고 반박했다.
정 변호사는 해외 밀반출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에는 총 49억 원을, 필리핀에는 2억 원을 투자한 것이 전부이며 관련 송금 명세와 자료를 갖고 있다”면서 “비자금 조성은 물론 밀반출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정관계 로비?=이 보고서는 비자금을 활용해 정관계에 로비를 했다는 부분을 담고 있다. 정치헌금 요구가 있을 때마다 ‘보험’ 차원에서 과감하게 자금을 지원했고 지방에 지사를 개설할 때에도 관계기관 인사들을 대상으로 비호세력을 구축했다는 것.
제이유그룹의 주 사업인 다단계 판매업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에 대비한 무마용으로 금품 로비를 했다는 내용도 나와 있다. 특히 2004년 5월에는 검찰에서 기업인수 자금 출처를 내사하는 것을 알고 로비스트인 H 씨 등을 통해 여당의 당직자를 대상으로 100억 원대의 비자금을 뿌려 내사 중단에 성공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도 담겨 있다. 보고서는 이 로비에는 여당 의원과 변호사, 지검장 등이 동원됐다고 쓰여 있다.
이 보고서에는 “J 회장 측근들이 ‘J 회장이 부도와 구속 등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금품 살포 리스트를 작성했고 이를 승부수로 활용하려 했다’고 말했다”는 부분도 있다. 이 리스트에는 여당 의원은 물론 검경 관계자 등이 포함돼 있다고 이 보고서는 밝혔다.
그러나 제이유그룹 관계자는 “조성하지도 않은 비자금으로 로비를 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일축했다.
▽보고서의 신뢰도는=이 보고서는 이 같은 내용을 단정적인 표현으로 기술하고 있다. ‘설(說)’이나 소문에 해당하는 내용은 별도의 표시를 해놓아 단정적인 표현을 한 부분은 회사 내부자의 확인을 거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국정원 보고서는 첩보 수준의 것”이라며 “이를 규명하는 것은 수사기관의 몫”이라고 말했다.
제이유그룹 측은 “J 회장의 신뢰를 받던 K 씨가 문제가 있어 회사에서 쫓겨났는데, 국정원 직원 중에 K 씨와 가까운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고 밝혀 K 씨의 악의적인 제보에 의해 이 보고서가 작성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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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제이유 그룹:
제이유그룹은 1999년 12월 설립돼 7년 만에 국내 최대 규모의 다단계 판매회사로 급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액만 2조5000억 원 수준. 활발한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상장사인 주방용품업체 세신, 코스닥 등록사인 포장 디자인업체 한성에코넷 등 22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제이유그룹은 세제 기저귀 로션 건강용품 등의 생활용품을 인맥을 통해 판매하는 전형적인 다단계 판매회사. 전현직 국회의원과 고위 공무원, 연예인 등 사회 각계의 유력 인사들을 자문위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검찰, 본사등 3차례 압수수색 다단계판매 불법성 우선 수사▼
제이유그룹의 불법 다단계 판매 및 정관계 로비의혹 등과 관련해 현재 검찰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혐의는 없다.
이 업체와 관련해 △불법 다단계 판매 △비자금 조성 △서해유전개발 사업 등 관련사업 △정관계 로비설 등 다양한 추측만 난무한 상태다. 특히 서해 유전개발 사업에 일정 부분을 투자한 제이유그룹이 주가조작 의혹에 관련된 점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은 제이유그룹의 여러 의혹 중 우선적으로 다단계 판매 사업의 불법성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3일 “제이유그룹의 수사 대상은 크게 수당 구조의 문제점, 판매 물품의 허구성, 회원에 대한 기망 행위 등”이라며 “확보된 회원 리스트만 11만5000여 명에 달해 이 중 피해자와 피해액을 밝히는 것이 수사의 초점”이라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4, 26일, 이달 2일 등 3회에 걸쳐 제이유그룹과 관련사들을 압수수색해 방대한 양의 자료를 확보해 분석에 들어간 상태다. 또 관계자 10여 명을 출국금지하고 회사 실무자를 불러 조사했다. 하지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정관계 로비의혹에 대해서 검찰은 현재까지 드러난 것이 없다고 명확히 선을 긋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해 로비를 포함한 불법적인 용도로 쓰였다면 수사의 대상이 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전혀 드러난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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