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이 된 전자·IT 제품
―요즘 소비자들은 로봇 청소기를 가족처럼 여기며 이름도 지어 준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현상입니다. 집에서 쓰던 로봇 청소기가 고장 났을 때 새것으로 바꿔 준다고 해도 사람들은 꼭 고쳐서 씁니다. 키우던 강아지가 아프면 새로 사는 게 아니라 동물병원에서 치료 받게 하는 것과 같죠.”
국내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정해진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청소기를 향해 “너도 참 고집이 세구나”라고 말하거나, 먼지통을 비워 달라고 ‘보채는’ 청소기를 자녀의 어린 시절에 대입하며 애정을 느끼기도 한다.
지난해 윤 상무는 SK텔레콤에서의 첫 작품을 내놓았다. 맞춤형 인공지능 통신서비스인 ‘1mm’. 휴대전화를 켜면 캐릭터가 등장해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면서 원하는 서비스로 안내한다. 인간과 기계의 간격을 1mm처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사용하는 휴대전화 캐릭터를 보여 주세요.
“지금 자고 있는데 깨울까요.”
새끼손톱 크기의 초록색 캐릭터 ‘만두콩’이 등장하더니 “오늘 기분은 어때”라고 문자로 말을 걸어 왔다. 윤 상무가 ‘철학자 니체에 대해 알고 싶다’고 입력했더니 그의 명언을 알려 주고, ‘윤송이’에 대해 물었더니 “윤송이 박사는 훌륭한 분이지”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 아이’는 마음의 안정을 주는 애완동물 같다”고 했다.
○인간과 기계의 감성적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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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도 ‘감성을 가진 합성 캐릭터’였다. ‘1mm’ 서비스는 이를 통신서비스에 접목한 것이다.
그러나 이 서비스는 큰 인기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SK텔레콤은 당초 유료였던 서비스를 무료로 바꾸기까지 했다. ‘윤송이’라는 대중적 인지도에 비하면 실적은 미치지 못했다.
“사람들이 뭐라 말하든 상관 안 해요. 어차피 인공지능 서비스는 지적 욕구를 지닌 20, 30대 젊은 소비자를 겨냥했으니까요. 평범한 서비스는 애당초 만들 생각이 없었습니다.”
잠시 얼굴을 붉혔을 뿐 침착했던 그가 기자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사용하던 로봇 청소기에는 강한 애착을 가지면서 휴대전화 기기는 늘 새것을 좋아하죠. 왜 그럴까요.”
허드렛일을 하는 청소기에는 고맙고 기특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휴대전화 속 캐릭터는 기기를 바꿔도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소통 대상은 기기가 아닌 프로그램이니까.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그는 조만간 일반에 선보일 ‘1mm’ 서비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통해 ‘윤송이식’ 해답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의 대기업 임원 생활은 벌써 3년째로 접어들었다. 회사의 전략과 서비스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하는 것이 임원이란 자리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천재 소녀’의 획기적 발명품을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윤 상무가 치르는 ‘유명세(有名稅)’인 동시에 그가 여전히 스타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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