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성 행남자기 부사장은 지난해 퍽 비싼 실험을 했다. 도자기 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외국인 산업디자이너 아릭 레비에게 그릇 디자인을 맡긴 것.
이스라엘 출신으로 카르티에 파리 본사 인테리어를 총괄해 명성을 얻은 레비는 신기술을 예술적으로 표현해 '테크노 시인'으로 불린다. 행남자기는 디자인료로만 7000만원을 지급했다.
'확산, 분출, 굴곡'을 주제로 한 '아릭 레비 by 행남' 컬렉션은 손가락으로 흙을 눌러 자국을 낸 것처럼 표면에 요철을 준 것이 특징. 8월 시중에 나올 예정이지만 프랑스 명품(名品) 테이블웨어 업체인 크리스토플이 이미 구입 의사를 밝혔을 만큼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디자인이 제품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면서 해외 스타 산업디자이너 영입이 한창이다.
아릭 레비 말고도 이집트 출신 카림 라시드와 영국의 재스퍼 모리슨이 한국 업체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프랑스의 필립 스탁도 한국 시장을 다녀갔다.
이들은 '상품'을 넘어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들. 제품 경쟁력을 높이고 디자인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신경 써야 할 점도 적지 않다.
●스타 디자이너들의 '한국 러시'
레비는 올 여름 출시될 LG생활건강의 화장품 용기 디자인도 맡아 했다. LG생활건강의 고급 화장품 라인인 '오휘' 제품 중에서도 VVIP(최상류층)를 기획해 만든 기초화장품세트다.
그는 코오롱 스포츠가 2007년 상반기 내놓을 새 아웃도어 캐주얼 의류 디자인도 맡았다. LG전자와의 휴대전화 디자인 프로젝트도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라시드는 현대카드 블랙과 S를 디자인하면서 한국에 이름을 알렸다. 원색적인 플라스틱이 주는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자유로운 느낌 때문에 그는 '디지털 노마드'로 불린다. 라시드는 3월 출시한 스포츠웨어 업체 아레나의 '카림 라시드 컬렉션'을 통해 한국 패션업계에도 진출했다.
출판사 '열린 책들'은 라시드에게 디자인을 맡겨 만든 책꽂이 'Mr. Know'의 인상이 워낙 강렬하자 2월 출간한 세계문학전집에도 이름을 그대로 썼다. '지식의 나무'를 상징하는 그의 작품은 현재 전국 대형서점에서 이 전집의 전용 책꽂이로 사용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모리슨과 디자인 계약을 맺었다. 최근 냉장고 세탁기 등 생활가전 일부 제품 디자인과 휴대전화 디자인을 마쳤다.
●강한 개성 수용할 수 있어야
디자인 전문가들은 유명 디자이너를 통해 한국 제품이 해외 디자인을 흉내 내는 수준을 넘어 국제시장에서 독창적 디자인으로 승부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들의 강한 개성을 수용하지 못하면 계약이 틀어지기 쉽다. 2002년 코오롱건설은 프랑스의 거장 스탁이 수석 디자이너로 있는 영국 부동산개발회사 Yoo와 합작회사를 만들었으나 사업성과 수익 등에 대한 인식 차이로 제휴를 접은 바 있다.
해외 디자이너들은 기능이나 마케팅, 출시 기간 등을 들어 디자이너를 채근하는 '한국적 문화'를 못마땅해 한다.
레비는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모든 게 너무 급하게 진행돼 불필요한 오류가 많이 나온다"고 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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