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기업 대성그룹의 주력인 대성산업의 정홍(64) 차량관리과장.
1965년 대성산업의 경북 문경광업소에 입사할 때만 해도 40년 동안 한곳에서 뼈를 묻을 줄은 몰랐다. 당시 그의 업무는 트럭과 통근버스를 운전하는 일.
“그때만 해도 운전면허증 가진 사람이 귀했어요. 군수하고 운전사 하고 안 바꾼다고 했다니까. 한달 월급 받으면 시골에 땅 한마지기 살 정도로 대우도 좋았지.”
그러다 서울로 근무지가 바뀌었고 1975년부터 김수근 대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김영대(당시 상무) 회장 운전기사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어요. 주위에서 재벌 2세 운전기사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신세라나요. 그런데 회장님께서 꼭 ‘정홍 씨’라고 부르면서 친구 대하듯 잘 보살펴주시더군요.”
그런 김 회장과의 인연이 30년이 됐다. 동갑내기인 둘은 친구처럼 소주잔도 기울이고 서로 어려움도 털어놓는 사이. 같이 환갑을 맞은 2002년에는 나란히 유럽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대성그룹의 정년은 55세. 하지만 정 과장은 “조금만 더 있어 달라”는 김 회장의 권유로 아직까지 운전대를 잡고 있다.
9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 대성그룹 본사에서 만난 정 과장 옆에는 1남 3녀 가운데 셋째딸 정종숙(33·대성산업 식품사업팀 대리) 씨와 외아들 정재영(30·대성산업 석유사업부 사원) 씨가 자리를 함께했다.
“가족이 한 회사에 같이 다니니 좋겠다”고 하자 종숙 씨는 “남들보다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2배, 3배”라며 “아버지께 행여나 누를 끼치지 않을까 매사에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종숙 씨의 대성산업 입사는 김영대 회장의 영향을 받았다. “앞으로 중국이 뜰 테니까 가서 공부하라”는 김 회장의 권유로 중국에서 4년간 유학한 뒤 2000년 입사해 중국수출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아들 재영 씨는 대성산업에서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한 게 인연이 돼 입사를 결정했고 2003년부터 석유사업부에서 일하고 있다.
“대학 4년 동안 방학 때마다 아버지의 권유로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덕분에 한번도 친구들하고 놀러가질 못했죠.”
딸 셋을 모두 출가시킨 정 과장은 아들 재영 씨를 내년에 장가보내고 나서야 은퇴할 생각이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나오고 운전기술 하나 배워 여기까지 왔습니다. 무일푼이었다가 아이들 대학 다 보내고 제 짝 찾아줬으니 회사 덕분이죠.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대성에서 일하렵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