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산업국의 막대한 에너지 수요와 석유 생산지역의 정치적 불안정, 이란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논란 등이 유가의 상승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선진국들이 새로 닥친 오일 쇼크에 잘 대처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석유는 유한한 에너지라는 점에서 상황이 좋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 느끼고 있다.
올해 초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유럽에 에너지 공급을 중단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서유럽 국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에너지 안보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유가가 급상승하고, 추운 겨울에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여론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공급이 보장되는 원자력 에너지가 다시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는 20년 전 옛 소련 체르노빌의 대재앙 직후 원자력 발전을 포기했고 아직도 선뜻 원전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뜻밖에도 핀란드가 최근 원전 건설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핀란드는 환경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민감한 나라다. 또 체르노빌 사고 때 방사능 낙진의 피해를 본 곳이다. 핀란드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러시아에서 안정적으로 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핀란드는 몇 년간의 심사숙고 끝에 핵에너지 개발에 착수했다. 프랑스 아레바사로부터 32억 유로에 유럽형 가압 경수로(EPR)를 구입하기로 계약했다. EPR를 세계 최초로 도입하는 것이다. 10년 계획으로 건설 중인 이 원전은 세계에서 가장 큰 원전이 될 전망이다. 핀란드는 제지산업에 필요한 막대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원전 건설을 결정했다.
핀란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원전에 대해 전례 없이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원전 건설에 실제로 뛰어든 나라는 많지 않다. 현재 건설 중인 원전 65기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중국,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에서 건설되고 있다. 중국은 원전을 매년 2기씩 15년 동안 세울 계획이며 인도는 현재 원전 8기를 건설 중이다.
유럽에서도 아시아에서처럼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국가별로 토론이 한창이다. 작은 변화가 이뤄진 곳도 있다. 네덜란드는 유일한 원전을 2013년에 닫을 예정이었으나 2033년까지 연장 가동하기로 결정했다. 북해 유전의 고갈에 대비해야 하는 영국은 낡은 원전 27기를 교체하는 문제를 숙고 중이다.
대중의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원자력이 주는 이득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온실 효과와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는 차원에서도 화석 에너지에 비해 청정한 원자력 에너지가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체르노빌의 악몽은 여전히 생생하다. 원전 건설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다고 하더라도 건설 장소를 결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에너지 주권, 에너지 안보의 필요성에 대해선 정부는 물론 대중이 동의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자신들의 동네에 원전이 들어서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 방법도 논쟁거리다.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지만 이처럼 아직 안전성에 의문이 가시지 않은 상태다. 각국 정부는 대중에게 원자력 에너지의 필요성을 강조하기에 앞서 안전함을 먼저 입증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앞에 두고 있다.
제라르 뱅데 에뒤프랑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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