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자연보전권역이라서….’
정부가 대기업의 투자를 독려하고 있지만 정작 수도권에 있는 기업들은 이런저런 규제 때문에 투자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하소연한다.
시대에 맞지 않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규제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기업의 푸념에 ‘엄살’이 전혀 없진 않겠지만 진지하게 경청해야 할 내용이 많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말한다.
○ 6조 투자 발목잡는 수도권 규제
경기 이천시에 공장이 있는 하이닉스반도체는 공장 빈터와 인근 터까지 합쳐 3000평 땅에 6조 원을 투자해 낸드플래시 메모리 공장을 증설할 계획을 세워 놓았다. 그러나 주변이 자연보전권역이라는 수도권 규제 때문에 1000평(3300㎡)까지만 증설할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이곳에서 나오는 폐수는 자체 정화돼 농업용수로 사용된다. 하지만 자연보호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투자가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
문제는 이곳에 보호할 만한 자연이 있어서가 아니라 행정구역상 여주군과 이천시가 자연보전권역이라서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는 점.
신규 공장이 세워지면 8000∼9000명의 신규 고용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로선 대규모 투자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경기 안양시에 있는 한 전선 공장은 주변에 택지가 개발되면서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섰다. 주변에 공장을 더 짓기 어려워 수도권에 땅을 물색했지만 포기해야만 했다.
수도권에선 8개 첨단 업종만 공장을 옮길 수 있고 전선업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아 꼼짝달싹할 수 없다. 공장을 증설하려면 지방으로 이전하든지 아예 해외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공장이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경쟁력이 떨어지므로 회사 측은 고민한다.
수도권 주변에 기업체 연수원을 1000평까지만 짓도록 제한하는 정부 방침에도 기업들은 불만이 많다. 연수원은 인구 집중 시설로 분류돼 수도권에선 1000평 이상 짓지 못하도록 돼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연수원은 강사와 연수생들이 교육 받고 나가는 곳이어서 인구 집중을 일으킬 요인이 없는데도 규제를 하니 난감하다”고 말했다.
○ 현 상태론 투자 늘어날 수 없어
신세계는 세계적인 ‘아웃렛(outlet)’ 회사인 미국 첼시사(社)와 손잡고 수도권에서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충지 4곳에 ‘프리미엄 아웃렛’ 사업을 할 계획을 세워 놓았다.
주요 거점 도시에서 50km가량 떨어진 곳에 교통이 편리한 대형 매장 터를 찾았지만 대부분 절대농지여서 땅을 구하지 못했다. 영동고속도로 근처 여주군청 소유 터를 겨우 확보했지만 나머지 경부권과 호남권 등 3곳에 마땅한 땅을 찾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신세계는 이 사업에 1조 원을 투자하고 4000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예상하지만 현재로선 성사되기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한 대형 에너지 회사는 민자(民資)발전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출자총액제한 규제에 묶여 투자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독립 회사를 만들면 바로 출자총액제한이라는 덫에 걸려 다른 회사 지분을 팔아야 한다.
SK네트웍스는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한국판매사업부를 만들어 자동차 딜러 사업을 하려 했지만 출자총액규제 때문에 계약을 해지해야만 했다.
대기업들이 기업도시 건설 같은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나서려고 해도 출자총액 규제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런 사업을 하려면 특수목적회사(SPC)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자체가 출자로 잡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오정근 부원장은 “투자 부진이 장기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수도권 공장 총량 규제와 출자총액제한 등 기업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조사본부장(상무)은 “전체 산업 1195개 가운데 35.7%인 427개 산업이 각종 진입 규제를 받고 있다”면서 “진입 규제뿐 아니라 입지 환경 금융 규제를 없애지 않으면 과감한 투자를 기대하기가 원천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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