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폴 크루그먼]미국 경제 현실로 돌아오다

  • 입력 2006년 5월 23일 03시 00분


지난주 뉴욕 증시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다시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그리 크지 않은 듯하다.

물론 주가의 단기 등락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번 주가 급락이 심각한 것은 미국 경제에 대한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미국 경제에 대한 확신을 잃은 것 같다. 요즘 경제지표를 보면 확신을 잃는 것이 당연하다.

지난해 가을부터 본격 상승하기 시작한 미 증시는 한 가지 믿음에 근거하고 있었다. 국가와 개인 차원에서 소득보다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것도 영원히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얼마 동안은 그럴 수 있는 듯했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7000억 달러를 넘어섰지만 달러 가치는 상승을 멈추지 않았다. 주택 가격은 계속 상승곡선을 그렸지만 주택 구입 열풍은 그치지 않았다. 가솔린 가격이 갤런당 3달러까지 올랐지만 가솔린과 생필품 소비는 줄지 않았다. 물론 소비자들은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빌려 와야 했다. 미국의 저축률은 1930년대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그런데 몇 주 전부터 미국 경제에 중력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달러 가치 하락은 한 달 전 시작됐다. 아직 엔화와 유로화 대비 하락률은 10% 정도이지만 다른 나라들에 달러가 전만큼 매력적이지 못한 것만은 분명하다.

주택시장도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 지난해 내내 전미주택건설업협회(NAHB)의 주택시장 지수는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런데 15일 발표된 지수는 1995년 이후 가장 낮았다.

고유가로 인해 소비도 얼어붙기 시작하고 있다. 최근 전미소매업협회(NRF)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소비 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경기 둔화 전망이 늘고 있는 것에 대해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애꿎게 언론 탓을 하고 있다.

백악관은 ‘오해 바로잡기: 경제 성장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왜곡된 시선’이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15일 발표했다. 임금 상승이 가솔린과 의료비 상승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가 잘못됐다는 것. 백악관 자료는 “지난 12개월 동안 시간당 임금은 3.8% 올라서 최근 5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과연 그럴까. 존 스노 재무장관은 17일 하원에 출석해 임금 상승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바니 프랭크 민주당 의원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임금 상승이 인플레율을 고려한 것이냐”는 그의 질문에 스노 장관은 마지못해 “그렇지 않다”고 시인했다. 사실 인플레를 감안하면 임금 상승분은 거의 사라지고 만다.

지난 3년 동안 경제 성장은 주택시장 활황과 소비 증가에 기인한다. 주택 가격은 계속 올랐지만 낮은 금리 덕에 미국인들은 주택을 살 수 있었다. 낮은 금리는 다른 나라들이 미국 채권을 사들여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미국인들은 임금상승률이 인플레율을 따라잡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높은 소비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주택담보대출로 생긴 현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런 ‘게임’이 끝나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경제를 운영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른 방법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미국에 그런 시간이 있을까.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최근 나타나고 있는 주식시장 냉각을 “매우 온건한 수준”이라고 평했다. 그의 말이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아니라면 최근 미국 증시 급락세는 심각한 경기둔화의 시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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