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대출“NO” 뭉칫돈 예금“YES”… 서민 없는‘서민은행’

  • 입력 2006년 5월 24일 03시 03분


《야채를 1t 트럭에 싣고 다니며 파는 윤택상(37) 씨는 대부업체에서 빌린 원금과 이자로 매달 46만5000원을 내야 한다. 1월 빙판길에서 미끄러지며 외제 승용차를 들이받은 윤 씨는 수리비가 필요해 상호저축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상호저축은행이 요구하는 담보가 없어 결국 대부업체에서 400만 원을 연 66% 금리로 빌렸다.》

‘서민과 중소기업의 금융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상호저축은행법 1조) 설립된 상호저축은행이 서민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상호저축은행 영업점 위치만 봐도 서민금융회사라는 취지가 퇴색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에 본점이 있는 24개 상호저축은행의 전체 영업점(출장소 포함) 85개 가운데 46개는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구’에 몰려 있다.

반면 강서구 금천구 노원구 도봉구 서대문구 성동구 용산구 은평구 중랑구 등 9개 구에서는 상호저축은행 간판을 아예 볼 수 없다.

이런 경향은 최근에 더욱 심해져 지난해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서울에서 새로 문을 연 상호저축은행 9개 지점은 강남구 4개, 서초구 2개, 송파 동작 영등포구 1개씩이다.

S상호저축은행 관계자는 “돈이 필요한 사람은 멀리서도 오지만 돈을 유치하려면 부자들 곁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며 “생존을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상호저축은행 예금은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1%포인트 정도 높아 부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특히 금리를 높여 특별 판매를 하면 뭉칫돈이 몰린다.

지난해 말 현재 상호저축은행 총수신 37조3000억 원 가운데 12조2000억 원(32%)은 한 사람이 4000만∼5000만 원씩 맡긴 뭉칫돈이다.

한국상호저축은행 관계자는 “4000만∼5000만 원 단위로 들어오는 예금은 대부분 개인이 맡기는 돈”이라며 “부자 고객들이 예금자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여러 사람 계좌로 나눠서 맡긴다”고 말했다.

3월 공개된 공직자 재산변동 내용에 따르면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해 본인과 부인 명의로 저축은행에 9100만 원을 예치했다.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는 산업은행에 1131만 원을 예금했지만 저축은행에는 본인과 부인 명의로 1억4000만 원을 넣었다. 윤대희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은 저축은행 2곳에 1억 원을, 최장봉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본인과 부인 명의로 5300만 원을 넣어 두고 있다.

상호저축은행은 대출에서도 서민을 외면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저축은행 대출 34조7343억 원 가운데 가계대출은 8조4653억 원으로 전년에 비해 3.4% 줄었다.

반면 부동산 관련 업종에 대한 대출은 14조51억 원으로 60.1% 급증했다. 부자들 돈을 모아 부동산 개발 또는 구입 자금으로 빌려 주는 것.

아주대 최희갑 경제학과 교수는 “서민이 서민금융회사를 이용할 수 없으면 대부업 같은 사금융으로 가게 된다”며 “사금융 이용으로 이자 부담이 커지면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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