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황호택]버블 폭탄 터뜨리기

  • 입력 2006년 5월 24일 03시 03분


서울 강남 3구(區)의 주택 가격이 짧은 기간에 가파르게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버블이라고 단정하기에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현재 강남 집값이 과대 평가돼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는 상태인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한참이 지난 뒤에나 가능하다. 경제학은 그런 점에서 무능한 학문이라고 불린다.

청와대와 국정홍보처의 브리핑만 들여다보면 강남 3구의 집값이 ‘닷컴’ 주식 거품처럼 하루아침에 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강남 주택을 펀더멘털(기초 조건)이 튼튼한 블루칩에 비유하는 이코노미스트들도 있다.

정부의 버블 붕괴 위협에 대한 반론을 들어 보자. 우선 강남 주택은 선호도가 높다. 다소 거품이 생겼더라도 일시에 꺼져 닷컴주나 튤립 버블처럼 가치가 제로가 될 가능성은 없다. 단일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은 거래비용이 낮아 1년에도 몇 차례씩 주인이 바뀐다. 주택은 거래비용이 높을뿐더러 지역마다 다른 시장이 존재한다.

세금 폭탄에 언어 폭탄이 이어지고 있지만 무거운 양도소득세를 부담하며 선호도가 높은 지역의 주택을 팔아 치우는 엑소더스가 금방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종합부동산세를 못 견디고 집을 팔 사람들은 중산층 봉급생활자, 은퇴 후 연금생활자 같은 ‘강남의 서민’이다. 포트폴리오를 잘 짠 알부자들은 오히려 타격이 작다.

청와대의 버블 터뜨리기는 실패해도 큰일, 성공하면 더 큰일이다. 주택시장이 연착륙 대신 버블 붕괴로 들어선다면 금융시스템에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일본과 같은 장기 복합불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선 구두(口頭) 개입이 효과가 없을 경우 시장의 신뢰를 상실해 백약이 무효가 된다. 강남 집값 잡으려다 강북이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강남 집값이 10% 떨어지면 강북 집값은 그보다 두 배, 세 배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8·31 부동산 종합대책 관련법은 무리에 무리를 거듭한 법이다. 정부 정책에 순응한 1가구 1주택자에게 무거운 종부세를 매겨 살던 집을 팔고 떠날 것을 강요한다. 그런데 종부세가 무거워 팔고 떠나려 해도 엄청난 양도세로 출구를 막아 버렸다. 주거의 권리도 억압하고 거주 이전의 자유도 차단한 법이다.

과도한 양도세를 물고 집을 팔아 불확실성에 내맡기느니 종부세를 맞더라도 1년 반만 견디면 결국 무리한 법률이 차기 정부에서 개정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세금 폭탄에도 집값이 꼼짝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통과됐기 때문에 다음 정부에서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다. 포퓰리스트 여당이 투쟁력을 상실한 참살이(웰빙) 야당의 방관 속에 만든 합작품에 너무 기대를 안 했으면 좋겠다. 1년 반 뒤의 일은 다음 정부에 맡기고 남은 임기나 잘 마무리할 일이다.

주택 가격 상승은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 스페인 중국을 비롯한 세계적인 현상이다. 사상 최저 금리와 기술주(株) 버블의 붕괴로 주식시장에서 부동산으로 자금이 이동하면서 집값이 상승했다. 대통령과 비서, 그리고 각료들이 일제히 버블 터뜨리기에 나선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주식시장의 거품이 걱정스러울 때에도 직접 공격하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시장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했다. 버블을 잘못 건드리면 폭탄으로 터져 버리기 때문이다.

강남 집값 잡기 시민사회운동을 제창한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은 “6년 전 강남에서 강북의 북한산 아래 동네로 이사 왔다”고 밝혔다. 집값이 오르기 전에 강남을 떠난 강북 사람의 강남 때리기가 민심에 어떻게 투영될지 모르겠다. 필자도 글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거주지를 밝혀야 한다면 현재 강남 3구에 살지 않고, 당분간 그쪽으로 이사할 생각도 없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황호택 논설위원이 신동아에서 만난 '생각의 리더 10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졌습니다.
가수 조용필, 탤런트 최진실, 대법원장 이용훈, 연극인 윤석화, 법무부 장관 천정배, 만화가 허영만, 한승헌 변호사, 작가 김주영, 신용하 백범학술원 원장,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

이 시대의 말과 생각
황호택 기자가 만난 생각의 리더 10인
지은이 : 황호택
가격 : 11,000 원
출간일 : 2006년 01월 01일
쪽수 : 359 쪽
판형 : 신국판
분야 : 교양
ISBN : 8970904476
비고 :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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