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 관련 강경 발언을 듣자면 자꾸 옛날 일이 떠올라요.”
세계적 컨설팅사의 임원 A 씨는 청와대 브리핑이 15일 ‘버블 세븐’을 규정하는 걸 보면서 과거 몇 장면을 떠올렸다.
1989년 12월 12일 이규성 재무부 장관이 “돈을 찍어내서라도 주식가격을 올리겠다”면서 발표한 증시부양책,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경기활성화를 명목으로 발표한 건설경기 부양책, 그리고 소비 진작을 위한 신용카드 남발 등이다.
A 씨는 “목표를 정해 한 가지에만 ‘올인(다걸기)’하는 경제정책의 후유증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고 말했다.
그의 걱정은 현 정부가 경제정책을 부동산 정책에만 다걸기하다 보면 반드시 후유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사석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우리의 소원은 집값 잡기”라는 것이다.
경제정책 전반을 조율하는 재경부지만 지금은 부동산정책 말고는 모든 정책 추진이 중단되다시피 했다.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명분을 달지만 사실 부동산 정책에만 몰두하는 영향이 더 크다.
노무현 대통령의 양극화 발언으로 시작된 ‘사회안전망 대책’의 1순위였던 일자리 창출 대책은 4월 28일 종합대책이 발표된 뒤 서랍 속에 잠들어 있다.
‘출산율 1.08’ 쇼크로 5월 12일 발표하기로 했던 ‘저출산 고령화 종합대책’도 다음 달 이후로 미뤄졌다.
양극화 해소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추진한다던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은 검토를 미룬 지 벌써 3개월이 됐다.
오직 부동산 대책만은 예외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잇달아 ‘부동산 버블 붕괴’를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역효과나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한 방향으로만 집중된 경제정책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았다.
1989년 발권력을 동원한 증시부양책의 결과는 3년 뒤 ‘깡통계좌’로 나타났다. 1998년 주택건설 부양책은 2002년 건설경기 버블로 귀결됐다.
가장 가까운 예는 신용카드 사태. 1999년 소비 진작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은 2003년 LG카드 사태로 폭발했으며 지금까지 ‘가계 빚’이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
하지만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8일 “강남 3개구의 집값은 버블 붕괴 직전”이라면서도 버블 붕괴에 대한 정부 대책을 묻자 “버블이 꺼져도 거시경제에 별 영향이 없다”고 했다.
전 세계 경제가 경기둔화가 우려되는 민감한 변곡점에 와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한국에서도 이미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이 자금을 빼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버블 붕괴에 따른 후유증을 고려하지 않는 듯한 ‘밀어붙이기 식’ 정책은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본부장은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에는 다양한 경제정책을 어떻게 적절하게 믹스해 경기를 연착륙시키느냐가 정책 당국이 할 일인데 지금은 오직 한 곳에 몰두해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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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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