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은 중개업소가 아닌 부녀회로 반드시 내놓기 바랍니다.”
2, 3년 전부터 서울 강남지역의 웬만한 아파트 단지 게시판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올해 들어서는 수도권의 다른 지역으로도 이런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주변 아파트 중개업소가 낮은 가격에 집을 내놓으면 부녀회장이 쫓아가 “문을 닫게 하겠다”고 항의하고 ‘피해야 할 중개업소 명단’에 올리기도 합니다. 아파트 시세를 낮게 평가한 부동산 정보업체에는 주민들이 단합해 항의전화를 겁니다.
인터넷 동호회를 통하는 등 방법도 고도화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열성’인 단지 가운데 일부는 ‘효과’가 나타나 집값이 오르기도 합니다.
8·31대책, 3·30대책 등 강경한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정부의 눈에 이런 움직임이 곱게 보일 리 없습니다.
급기야 지난달 25일 재정경제부 김석동 차관보는 “부녀회 담합 등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관계 부처 간 협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발표는 했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단속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겁니다.
일단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며 물러섰습니다. 부녀회는 담합 행위 조사대상인 ‘사업자 단체’가 아니라 ‘친목 단체’라는 것입니다.
대신 건설교통부가 총대를 멨지만 고민에 빠지긴 마찬가지입니다. 집값 담합을 위한 전단지 배포, 단지 내 방송 등의 행위에 과태료를 물릴 방안을 찾고 있지만 ‘개인의 자유권 침해’라는 안팎의 반론이 만만찮아 시행 여부는 불확실합니다.
부녀회의 아파트 값 담합은 게임이론에 나오는 ‘죄수의 딜레마’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아파트 값이 분명히 떨어진다면 부녀회가 아무리 나서도 주민들은 숨어서라도 집을 내놓게 돼 있습니다. 남보다 먼저 집을 내놓는 쪽이 무조건 이익이 되기 때문에 담합은 저절로 깨지게 됩니다.
정부의 주장대로 ‘버블 붕괴’가 이미 시작됐다면 이런 쓸데없는 일에 불필요하게 행정력을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요.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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