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는 후하게, 배당은 짜게
본보가 4일 10대 그룹 계열 64개 상장회사의 2005년 사업보고서 등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영업이익이 2004년보다 줄어든 33개 기업 가운데 등기임원(대표이사를 포함한 사내이사, 사외이사, 감사)의 보수를 올린 곳이 20개사(60.6%)나 됐다.
이 가운데 배당성향이 낮아진 기업이 6개였다. 배당성향은 당기순이익에서 배당금액이 차지하는 비율로 일반적으로 배당성향이 높을수록 주주중심 경영을 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영업실적이 악화됐는데도 올해 지급할 임원 총보수한도를 늘린 기업은 18개(54.5%)였다. 10대 그룹 64개 상장회사 대부분은 최근 3년간 기업의 실적과 상관없이 등기임원의 보수한도를 올리거나 유지했다.
이유를 묻자 해당 기업들은 “보수한도는 어디까지나 지급 ‘한도’를 정한 것이지 실제 지급액은 다르다”거나 “동종 업계와 비교할 때 낮은 편”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익이 줄어도 보수는 늘리고 배당을 줄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 김범석 사장은 “지난해 투자한 120개 기업 가운데 임원 보수한도는 유지되거나 늘었는데도 배당이 줄어든 18개사의 주총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며 “경영진 보수에 대해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허술한 관련 공시 규정
기업들이 ‘경영진 보수는 후하게, 주주 배당은 짜게’ 해도 투자자들이 이를 제대로 판단하기는 힘들다. 등기임원의 보수(한도)는 총액만 공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 실제 지급되는 보수는 주총이 아닌 이사회만 통과하면 된다.
더구나 어떤 이유로 보수한도를 올리기로 했다는 설명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이 보수가 적은 사외이사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이는 경영진 보수 관련 공시 규정을 강화하는 세계적인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
미국 코카콜라 본사는 올해부터 3년간 연평균 주당 순이익이 8%를 넘어야 임원들에게 성과급을 주기로 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최고경영진에게 주는 주식매입선택권(스톡옵션)을 폐지하는 대신 실적에 연동해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2001년 회계분식으로 기업이 파산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경영진 수십 명이 550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아 챙긴 ‘엔론 사태’ 이후 기업이나 금융감독 당국은 보수 관련 규정을 강화하는 추세이다.
미국은 개별 등기임원의 보수를 공개하는 나라여서 원래 한국보다 공시규정이 강하다. 그런데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올해 초 상장기업의 경영진에 대해 3년간 받았던 보수를 공개하도록 하는 등 공시규정을 더 강화했다.
크리스토퍼 콕스 SEC 의장은 “주요 경영진의 보수 관련 규정을 강화하는 것은 투자자들에게 가능한 모든 정보를 명확하고 쉽게 줘서 (투자할 만한 곳인지) 잘 평가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개별 임원 보수 공개 찬반 논란
한국의 상장기업들은 주총 소집 공지나 사업보고서를 통해 등기임원의 보수(한도)를 ‘총액으로’ 공시한다.
이와 관련해 국회의원 10명은 최근 개별 임원의 보수를 공개하자는 내용의 증권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국회 재경위 현성수 수석전문위원은 “경영진의 보수는 중요한 투자판단 자료”라며 “지금처럼 이사회에서 보수를 정하고 총액만 공개하면 지배주주나 최고경영자가 이사회를 지배해 성과에 따른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증권연구원 노희진 연구위원은 “경영진의 보수 공개 시 노조와의 다툼이 생기는 등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기관투자가 같은 주요 주주들이 주총에서 투자자의 입장을 잘 대변하면 해결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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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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