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기술인력 채용 ‘脫코리아’…“동남아 숙련공 VIP노동자”

  • 입력 2006년 6월 7일 03시 00분


《국내 대기업 S사는 겨울이면 필리핀인 노동자들에게 눈구경을 시켜 주기 위해 스키장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역시 이 기업에 근무하는 인도인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구입해 준 장비와 시설을 이용해 모국의 인기 스포츠인 크리켓 대회를 열어 즐긴다. S사 인사팀의 한 관계자는 “부족한 기술자를 확보하기 위해 아시아 각지의 고급 인력을 채용하고 이들이 장기간 회사에 머물 수 있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는 3D 업종에서 일하면서 고용주의 노동 착취와 임금 체불 등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는 것으로만 일반에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시아계 외국인 노동자의 위상이 변하고 있다. 기업들이 저임금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고임금 숙련 외국인 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기 때문.

전문가들은 “한국이 외국인 고급 숙련 노동자를 유치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어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아시아계 A급 노동자를 잡아라=국내 기업들이 인도 중국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 각국을 돌며 A급 인력을 채용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 기업은 국내 및 외국 기업에 이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이들이 일단 한국에 왔더라도 미국 및 유럽 기업의 ‘러브콜’을 경계하고 있다.

국내 중견 기업인 H사는 중국인 숙련 노동자를 선발한 뒤 이들에게 한류 스타의 콘서트 관람 기회를 주고 있다. 또 고기를 먹지 않는 인도계 노동자를 위해 끼니마다 채식 위주로 식단을 짜는 기업도 등장했다.

한 하드디크스 헤드 전문 제조업체는 지난달 말 다국적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태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려고 법적인 절차를 모두 밟았으나 막판에 빈약한 사내 복지 때문에 이들을 놓치고 말았다.

국내 중소기업에 아시아계 고급 인력만을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컨설팅 회사도 등장했다.

▽왜 아시아계인가=국내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으로 미국이나 유럽과 비슷한 수준의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아시아계 외국인 노동자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인도 필리핀인 노동자의 경우 영어 구사 능력이 뛰어난 점도 국내 기업이 매력을 느끼는 한 가지 이유다.

전문기술인력 비자인 E1∼E7 비자를 갖고 합법적으로 취업한 외국인 노동자는 지난해 9월 현재 2만3314명이다. 이들을 국가별로 분류하면 필리핀이 2465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중국(2457명) 인도(885명) 러시아(877명) 등의 순이다.

한 컴퓨터 부품 회사의 인사 담당자는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에서 기술을 익힌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 국내 인력보다 기술 수준이 훨씬 높은 경우가 많다”면서 “기업들이 이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교육 주택 문제가 핵심=기업들이 아시아계 A급 인력의 확보에 부심하자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법무부 등은 이들의 입국 편의를 위해 IT카드, 골드카드 등 각종 출입국 편의 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외국인 노동자의 입국 절차를 밟는 데 한 달 이상 걸리는 실정이다.

기업 실무자들은 아시아계 고급 인력 수급을 위해 무엇보다 주택과 교육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삼성중공업의 외국인 인사담당자 임성근(29) 씨는 “아시아계 고급 인력은 한국 생활과 직장에 만족하더라도 결국 아이들 교육 문제로 한국을 떠난다”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자녀들이 저렴하게 다닐 수 있는 국제학교 건립 등 교육 문제가 시급히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이종식 기자 d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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