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외환은행 매각 실무를 주도했던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이 4월 출국 금지되고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 최근 구속되면서 이 전 부총리의 금융계 인맥을 일컫는 ‘이헌재 사단’ 전체가 검찰의 사정권에 들어왔다.
▽이헌재 사단이 수사 초점=금융 당국과 금융계에 진출해 있는 이 전 부총리의 인맥은 그동안 관련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이 전 행장과 이달용 전 외환은행 부행장, 변 전 국장,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 등이 모두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이들은 금융권과 정부 등 서로 다른 곳에서 일했지만 이 전 부총리를 매개로 얽혀 있다.
이 같은 배경 아래 이 전 부총리는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론스타에 법률 조언을 해 준 김&장 법률사무소의 고문을 맡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 전 부총리가 금융 당국에 진출한 인맥을 통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돕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전 부총리가 외환은행 매각 실무를 주도한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 고위 관계자에게 은행법 시행령의 예외 조항을 적용하도록 아이디어를 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003년 당시 론스타는 금융회사가 아닌 외국인투자가들의 국내 은행 주식 소유를 제한한 은행법에 따라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얻기 힘든 상황이었다. 외국인투자가는 국내 은행 주식을 10%까지만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은행법 시행령에는 ‘부실 금융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하도록 한 규정이 있고 금융 당국은 이 조항을 적용해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인수 자격을 줬다.
이와 관련해 최경환 한나라당 의원은 16일 정책자료집을 통해 2003년 당시 은행 인수 자격이 없던 론스타가 편법으로 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김&장 법률사무소가 지원을 했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김&장이 재경부와 금감위에 이 ‘예외’를 적용하도록 해결책을 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정태인 전 대통령국민경제비서관은 4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외환은행 매각이 불법으로 이뤄졌고 이헌재 사단의 작품이었다”고 주장했다.
▽출국 금지 배경 및 수사 전망=검찰이 이 전 부총리를 출국 금지한 1차적인 이유는 이 전 부총리의 해외 출국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검찰의 내사 사실을 접한 이 전 부총리가 갑자기 출국할 경우 수사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전 부총리에 대한 출국 금지는 이 전 부총리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 부적절하게 관여한 단서와 정황을 검찰이 일부 확보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출국을 막아 반드시 소환해 조사해야 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검찰이 수사를 해 오면서 범죄 단서가 포착될 경우 관련자를 출국 금지해 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검찰의 단서 포착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앞으로 검찰은 이 전 부총리가 2003, 2004년 대출금 10억 원을 상환한 자금의 출처를 조사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이 돈의 출처를 따라가다 보면 2003년 당시 이 전 부총리의 행적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채동욱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론스타 수사가 7월 말까지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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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호 前국장 이어 전직 수장까지…재경부 뒤숭숭▼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구속된 데 이어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이 검찰의 계좌 추적을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재경부 관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분들이 설마 그런 일을 저질렀겠느냐”고 말하면서도 검찰 수사의 칼날이 서서히 재경부 쪽을 향하자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더구나 대검 중앙수사부의 수사라는 점에서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15일 “변 전 국장 구속도 충격인데 이 전 부총리까지 계좌 추적을 당한 사실이 알려져 모두 당황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수사가 넓게는 오랫동안 한국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모피아(재경부 영문명과 마피아 합성어), 좁게는 ‘이헌재 사단’을 겨냥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 변 전 국장도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된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이 전 부총리의 계좌 추적은 론스타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예상돼 왔다”며 “이 전 부총리의 계좌를 뒤질 정도면 재경부 금융정책국 출신들의 계좌도 이미 들여다봤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변 전 국장의 구속에 이어 이 전 부총리의 계좌 추적까지 이뤄지면서 론스타에 대한 외환은행 매각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논리가 의심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한편 변 전 국장과 이 전 부총리의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적지 않은 파장과 후유증이 따를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상당수 재경부 관리는 “주요 정책 부처라는 자부심에서 밤낮으로 일했던 것에 대한 자괴감이 든다”며 재경부의 사기 저하를 우려했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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