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와 채무자
제보자를 만난 곳은 경북 구미역에서 차로 30분 걸리는 작은 면사무소 소재지. 그는 한옥을 대충 개조한 작은 식당에서 일하며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에 투박한 손, 물 한잔을 건네는 왼손 검지 끝마디가 허전했다. 고기를 써는 절단기에 잘렸다고 했다. 20여 년 동안 공단 노동자들의 작업복 세탁만 한 탓에 식당 일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
살길이 막막했다. 그녀는 한 달에 30만 원이면 생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채무자가 제시한 월 1.5%의 이자에 돈을 빌려 줬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자가 끊겼다.
며칠 뒤 법원에서 ‘채무자가 개인회생을 신청했으니 판결 때까지 채권을 변제받거나 변제를 요구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한다’는 편지가 왔다.
날벼락이었다. 대학을 나온 여동생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함께 채무자를 찾아갔다. 하지만 “개인회생제도가 뭔지 모르느냐.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사실 채무자도 어려웠다. 소규모 사설 학원의 미니버스를 운전한다는 채무자는 낡은 체육복 바지에 발가락이 드러나는 슬리퍼 차림이었다.
학원장은 그가 매달 차량 유지비와 기름값을 포함해 80만 원의 월급을 받는다고 했다. 밤에는 대리운전도 하지만 매달 30만 원을 가불하는 형편이고 아내도 밤늦게까지 식당에서 일한다.
○방법은 없다
‘돈을 떼어먹는 사람에게 유리한 법이 있다니….’
자매는 인터넷을 뒤지고 법률사무소에 전화도 했다.
법률사무소에선 “이미 늦었다”고 했다. 판사에게 호소문도 썼지만 법원에서는 “접수했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자매는 청와대 인터넷 신문고에도 하소연했다.
기자가 채권자와 채무자를 모두 만나고 상경하는 길. 기차역 등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개인회생·파산 무료상담’이라는 광고가 붙어 있었다. 수백만 원 때문에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사람들에게 무료상담을 해 준다는 법무사와 변호사들은 사건마다 50만∼150만 원의 수임료를 받는다.
시중에는 ‘빌린 돈은 갚지 마라’, ‘합법적으로 빚에서 해방되는 법’ 등의 책도 나와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그동안 우리 사회는 신용불량자를 줄이기 위해 개인파산 및 회생 신청자를 보호하는 데 주력했다”며 “하지만 이제는 이 제도의 그늘에 있는 돈 없는 채권자들에게도 신경을 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개인회생제도란:
10억 원 이하 채무자를 구제하기 위한 법원의 신용불량자 지원제도. 일정 기간(보통 5년) 소득 수준에 따라 빚의 일부를 갚은 뒤 나머지 채무는 면제받는다.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돈을 여러 채권자에게 채무 비율에 따라 갚기 때문에 사실상 빚의 대부분이 면제된다.
신용회복지원제도 비교 | |||
개인파산·회생 | 개인워크아웃 | 개별 금융회사 신용회복지원 | |
운영주체 | 법원 | 신용회복위원회 | 각 금융회사 |
대상채권 | 무제한(사채 포함) | 2개 이상 금융회사 다중채무 | 1개 금융회사 단독채무 |
채무범위 | 담보채무 10억 원, 무담보채무 5억 원 이내(개인파산은 무제한) | 3억 원 이하 | 소액(1000만 원 이하) |
장점 | 법적으로 면책되고 사채도 채무조정 대상 | 절차 간편, 저비용 | 절차 간편, 저비용 |
단점 | 변호사 선임하면 비용 들고 절차가 복잡하며 장기간 소요 | 대상자 자격 까다롭고 사채는 조정 불가능 | 사채는 조정 불가능 |
채무 불이행자 채무조정 현황 (단위: 명) | ||||||
2000년 | 2001년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
개인파산 | 329 | 672 | 1335 | 3856 | 1만2317 | 3만8773 |
신용회복 | - | - | - | 6만2550 | 28만7352 | 19만3698 |
자료: 한국은행, 신용회복위원회, 대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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