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요즘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명은 늘어나고, 예금이자율은 물가상승률을 약간 웃도는 수준으로 떨어져 저축만으로는 은퇴 이후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점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
많은 사람이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자녀 교육비나 빚 갚기에도 벅차 여유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데다 막연히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국의 표준 30∼40세 가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저축만으로는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 저축만으로는 부족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1∼3월) 월평균 가계수지 동향을 참고해 표준 가정을 파악했다.
표준 가정의 연 수입은 3600만 원, 생활비를 지출하고 남는 돈은 연 수입의 15%인 540만 원이다.
또 부인이 남편보다 3세 적고 평균 수명은 남성 85세, 여성 92세라고 가정했다.
가장이 현재 30세인 가정은 그나마 행복한 편이다. 은퇴까지 30년이 남아 대비할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가장이 30세인 가정이 매년 연봉의 15%를 연 이자 4.2%의 저축상품에 넣으면 은퇴 시점인 30년 후 가치로 9억1600만 원을 모으게 된다. 하지만 은퇴 이후 월 200만 원을 지출하려면 당시 가치로 13억3400만 원이 필요하다. 남편이 80세, 아내가 77세 되는 20년 뒤에는 모았던 돈이 모두 떨어진다.
만일 부부가 같은 돈을 매년 8%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곳에 투자하면 30년 뒤 15억6600만 원을 모을 수 있다.
연 이자 4.2% 저축과 연 8% 투자에 따른 결과는 첫해 32만 원(5.8%) 차이에 불과하지만 30년 후에는 6억4917만 원(70.8%)으로 커진다.
35, 40세로 나이가 많아질수록 저축으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기간은 더욱 줄어든다.
35세 가장이 은퇴 이후 월 200만 원을 쓰려면 60세가 되는 25년 뒤 가치로 11억5700만 원이 필요하다. 저축만으로 모을 수 있는 돈은 절반 수준인 5억6500만 원. 남편 74세, 아내 71세가 되는 해에 돈이 고갈된다.
40세 가장은 은퇴하는 20년 뒤 가치로 9억5000만 원이 필요하지만 3분의 1 수준인 3억3500만 원만 모을 수 있다.
그나마 이는 임금이 최근 6년간 평균치인 7.7%씩 매년 오른다고 가정한 결과다. 임금상승률이 점차 낮아지고 있어 실제로는 이보다 적을 가능성이 크다.
모든 국민이 65세부터 국민연금을 받는다고 보고 노후 필요자금에서 국민연금만큼을 뺐다. 국민연금 지급액이 예상보다 줄어들면 노후 필요자금은 더 늘어난다.
○ 부동산만으로 안심하면 안 돼
이런 결과에 직장인들은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인철(35) 씨는 “월 50만 원가량을 장기주택마련저축이나 개인연금에 넣고 있는데 노후가 좀 걱정되긴 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했다”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니 두렵다”고 말했다.
부동산을 갖고 있는 가정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주부 서혜선(37) 씨는 “5, 8세인 아이 둘을 키우며 월 70만 원 정도 저축하고 있다”면서 “빚을 내서 산 서울 목동의 아파트가 있어 그래도 안심”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동산 자산은 값이 오를 수도 있지만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상태로는 노후 대비가 안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은퇴까지 시간이 별로 남지 않은 40대 중에는 현금은 거의 없고 부동산만 갖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부동산 가격이 항상 오르는 게 아니므로 하락 위험까지 고려해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눈높이 낮추고 오래 일하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가능하면 은퇴 시기를 늦춰야 한다. 돈을 적게 받더라도 65, 70세까지 ‘현역’으로 일하는 게 중요하다.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강창희 소장은 “연봉에 상관없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자세를 갖고 은퇴 시기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에서는 실제로 이런 움직임이 있다.
노무라종합연구소가 지난해 9월 1947∼49년 출생한 ‘1차 베이비부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0%는 은퇴 이후에도 직장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들 가운데 80%는 월급으로 10만∼30만 엔(약 80만∼240만 원)을 받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인의 자산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80%를 넘는 부동산 비중을 줄이는 대신 10%대에 불과한 금융자산 비중을 미국 수준(33%)으로 높여야 한다는 것.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사장은 “자산을 나눠 일부는 채권 같은 안정적인 곳에, 일부는 주식 같은 공격적인 곳에 투자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한국재무설계 오종윤 국제공인재무설계사는 “일반인이 본업을 하면서 채권이나 주식에 직접 투자해 예금 이자보다 높은 수익률을 꾸준히 올리기는 어렵다”며 “펀드에 가입해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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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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