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돈은 1만 원. 한국이 이기면 즐거운 마음에 1만 원을 잃은 아쉬움을 보상받을 수 있고, 져도 아쉬운 마음을 1만 원으로 달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증권가에서 일하는 그 친구는 자신의 선택을 ‘위험 회피’라고 설명했다.
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특히 위험 회피가 일상적인 업무인 금융권에서는 이런 선택이 더욱 일반적이다.
일반적인 위험 회피의 수단은 보험이다. 적어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그랬다. 금융회사들은 월드컵 성적에 따라 금리를 우대하는 이벤트를 벌였고 보험회사들은 보험료를 받는 대신 그 위험을 떠안았다.
한국이 예상을 뛰어넘어 4강에 오르자 보험사들은 막대한 보험금를 부담해야 했다. 공식 보험사였던 현대해상 1곳에서만 83억 원의 보험금을 지급했을 정도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2002년과 달리 이번 월드컵에서는 한국의 16강 진출은 아예 보험 가입 대상조차 아니었다. 2002년에 4강에 올랐는데 16강은 쉬운 일이라는 예상이었다. 자연히 보험료도 50∼70% 올랐다. 그러자 보험 가입을 포기하는 금융회사가 크게 늘었다.
하나은행은 한국팀이 8강에 오르면 2%포인트의 추가 금리를 주기로 한 ‘오 필승 코리아 예금’을 3000억 원어치 판매했다. 그러나 보험은 들지 않았다. 8강 가능성을 낮게 봤다고도 볼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와 월드컵 대표팀 공식 후원은행인 하나은행 측은 이를 ‘위험 회피’ 차원에서 접근했다고 한다. 한국이 8강에 오르면 막대한 홍보 효과를 볼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비용부담이 줄어든다는 계산이었다.
대표팀 박지성 선수를 후원하는 우리은행도 마찬가지다. ‘I♡박지성 예금’을 1165억 원어치 팔았다. 국가대표팀이 4강에 오를 때 얹어주는 금리는 많게는 2.9%포인트.
금융회사로서는 국가대표팀이 이기면 마케팅 효과와 승리의 기쁨을 즐길 수 있고, 패배하면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대표팀을 응원했다.
김상훈 경제부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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