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기 노조위원장은 30일 오후 5시 노조 사무실에서 대의원 7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상기된 표정으로 개표 결과를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새 지평을 열게 됐다”고 밝혔다.
또 그는 “제조업 중 전국 최대 단일노조인 현대차 노조의 산별노조 전환을 계기로 16만 금속연맹 조합원이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뭉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2003년 6월 한 차례 부결된 산별노조 전환이 이번에 가결된 것은 노-노 갈등이 거의 없었고 산별노조 전환 투표가 올해 임금협상 파업투쟁 시기와 맞물려 조합원의 위기감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노동계는 분석한다.
비정규직을 포함해 모든 노동자가 함께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조합원의 인식 변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회사 앞 식당에서 동료와 식사하던 승용1공장 근로자 이모(43) 씨는 “솔직히 산별노조로 전환되면 무엇이 좋고 어떤 게 달라지는지 모르지만 대의원의 설득으로 산별노조 전환에 찬성했다”고 털어놨다.
같은 공장 근로자 김모(48) 씨는 “산별노조로 전환되면 후생복지 수준이 저하되지 않을까 우려돼 반대했다”며 “노조 집행부가 산별노조 전환을 이끌어 내기 위해 너무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회사 관계자는 “산별노조로 새롭게 출발하는 노조도 지금까지의 강성 투쟁 이미지를 벗고 상생과 화합의 시대를 열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회사의 노사 협상팀 관계자는 “노조가 총력을 기울인 산별노조 전환 투표가 끝났으니 임금협상안 가운데 무리한 요구사항은 양보해 협상을 빨리 마무리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재계 “악!”▼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GM대우 노조가 30일 산별노조 전환을 가결하자 자동차 업계는 물론, 재계가 전반적으로 긴장하는 분위기다.
특히 국내 최대 단일노조인 현대자동차 노조의 산별노조 전환은 향후 산업계 전반에 걸쳐 노사 관계에 큰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현대차는 노조의 산별노조 결정으로 현재 노조의 파업은 물론이고 4일부터 재개될 임금 협상에서 노조가 주도권을 잡게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한 임원은 “최근 총수 구속에 따른 경영 공백으로 해외 사업이 차질을 빚었는데 산별노조 전환에 따라 노사 분규가 심해지면 생산, 판매 차질로 인한 손실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계와 경제단체도 향후 노사 관계에서 노조의 힘이 커지는 데 대해 염려하고 있다. 사업장별 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되면 교섭과 파업 등이 모두 개별노조가 아니라 산별노조 중앙집행부의 지침에 따라 이뤄져 기업별 노조에 비해 교섭력이 강화된다.
이에 따라 노조가 회사 측을 무리하게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 재계의 주장이다. 또 노조의 정치적 성향이 강한 한국 현실로 볼 때 노조가 사회, 정치적 문제로 분규를 벌일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한 관계자는 “산별노조로 전환하면 중앙집행부와 각 회사 지부가 이중으로 교섭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교섭 기간이 길어지고 교섭 비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도 “산별노조의 장점을 살리기보다 무분별한 파업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며 걱정했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최근 선진국들은 산별노조의 불합리한 교섭 구조를 탈피해 기업별 노조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라며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무는 “산별노조 전환으로 비생산적인 파업 반복, 사업장 밖 투쟁 동원은 물론 산업계가 정치 투쟁의 장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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