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천국’ 中 쑤저우에서 배운다

  • 입력 2006년 7월 11일 03시 00분


중국에서 ‘외국 자본의 블랙홀’로 불리는 쑤저우 공업원구. 1994년 싱가포르 정부와 공동으로 개발을 시작한 이후 총 600억 달러(약 57조 원)가 이 단지에 투자되면서 허허벌판(위)에서 첨단 정보기술(IT) 단지(아래)로 탈바꿈했다. 사진 제공 쑤저우 공업원구 관리위원회
중국에서 ‘외국 자본의 블랙홀’로 불리는 쑤저우 공업원구. 1994년 싱가포르 정부와 공동으로 개발을 시작한 이후 총 600억 달러(약 57조 원)가 이 단지에 투자되면서 허허벌판(위)에서 첨단 정보기술(IT) 단지(아래)로 탈바꿈했다. 사진 제공 쑤저우 공업원구 관리위원회
《중국 상하이(上海) 시에서 서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쑤저우(蘇州) 시의 공업원구(工業園區). 이곳은 중국 내에서도 ‘외국 자본의 블랙홀’로 통한다. 이미 공업원구의 대부분이 초고층 첨단 빌딩과 공장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수백 개의 대형 크레인이 건물 신축 현장에서 굉음을 내며 쉴 새 없이 가동되고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공무원들과 기업인들의 표정에서는 개발과 발전에 따른 ‘만족’과 미래에 대한 ‘기대’로 넘치고 있었다. 1994년 중국 중앙정부와 싱가포르 정부가 공동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이 경제특구에는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이 앞 다퉈 진출하고 있다. 성공의 뒤에는 기업 친화적 마인드로 무장한 현지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서비스 정신이 있었다.》

○ 허허벌판이 첨단 정보기술(IT) 단지로

쑤저우 공업원구는 중국 경제에 비전을 제시한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평가받고 있다.

공업원구의 성공적인 개발 덕에 쑤저우를 거쳐 간 고위 관리들이 대부분 중앙정부 관리로 발탁됐다. 쑤저우의 개발 모델을 중국 전역으로 확산시키려는 중앙정부의 판단 때문이다.

투자 열기 덕에 12년 전까지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은 초대형 빌딩이 들어찬 첨단 IT 생산기지로 탈바꿈했다.

이곳에 진출한 기업의 절반 이상은 환경 친화적인 IT 업체다. 필립스, 노키아, 히타치, 후지쓰, 지멘스, AMD, 인피니온 등 세계 500대 기업 중 100여 개가 공업원구에 자리를 잡고 있다. 한국 기업 중에서도 이 공업원구 외자 기업 1호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11개 기업이 진출해 있다.

장하오(張昊) 쑤저우공업원구개발유한회사(CSSD) 부총재는 “신규로 외국기업을 유치하는 것 외에 이미 입주한 기업이 공장 규모를 늘리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며 “2014년까지 총 1000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공업원구 내에는 중국에서 3번째로 규모가 큰 컨벤션센터가 완공됐으며 현재 각종 문화 예술행사를 열 수 있는 ‘과학기술문화센터’가 지어지고 있다.

○ 서울 절반 크기에 57조 원의 외자 유치

싱가포르와 쑤저우 시가 공동 출자해 만든 CSSD가 공업원구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CSSD는 지금까지 총 2432건의 외자유치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서울의 절반 면적(282km²)인 이곳에 무려 600억 달러(약 57조 원) 이상의 외국자본이 투자된 것이다.

지난해 중국 전체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531억 달러. 그중 28.9%인 153억4000만 달러가 쑤저우 공업원구에 투자됐다. 지난해 한국에 투자된 115억6000만 달러보다 32.7%나 많다. 한국은 외국인 투자액이 줄고 있지만 이곳은 매년 10% 안팎씩 늘고 있다.

지역내총생산(GRDP)도 연평균 45%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1인당 GRDP도 8000달러나 된다.

성장의 혜택은 시민에게 돌아간다. 쑤저우 시민들은 좋은 일자리를 얻었고 소득이 늘어 덩달아 상권(商圈)도 살아났다. 작은 시골 도시가 개발 12년 만에 중국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 중 하나로 변신했다.

○ 공무원의 서비스 정신이 만든 ‘기적’

상하이에 비해 30∼40% 낮은 인건비와 부지 비용, 각종 세제(稅制) 혜택, 뛰어난 교통 여건, 질 높은 자녀 교육 여건…. 쑤저우 공업원구는 기업인들에게는 말 그대로 ‘천국’이다.

특히 한국에 비해 10%포인트나 낮은 15%의 법인세율이 매력적이다. 더구나 이익이 생기는 첫해부터 2년간은 법인세가 면제되며 이후 3년간은 기본 세율의 절반인 7.5%의 세율이 적용된다.

하지만 쑤저우를 ‘외자기업의 천국’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공업원구 관리위원회와 CSSD에 파견된 공무원들의 ‘외자유치에 대한 열정’과 ‘철저한 서비스 정신’이었다.

공업원구 관리위원회는 법인 설립 인허가부터 투자회사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중앙정부의 통제 없이 전권을 갖고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모든 공무원은 입만 열면 ‘친상(親商)’, 즉 기업친화적 서비스를 강조했다. CSSD에서 투자유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조선족 김선희 고급집행관은 “이곳의 공무원은 기업에 서비스하기 위해 존재한다”며 “기업 업무를 대신 해 주기 위해 새벽까지 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의 ‘원스톱 서비스센터’에는 인사, 환경, 세무, 통관 등의 창구가 있지만 기업인은 직접 방문할 필요가 없다. 전담 공무원에게 맡기면 모든 업무를 3∼5일에 마무리해 주기 때문이다.

한국 지방자치단체나 경제특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사회주의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쑤저우에 진출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이성춘 차장은 “이곳의 공무원은 ‘공무원’이라기보다 ‘서비스맨’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공업원구의 투자개발 회사 중 하나인 젠웨이(Genway)의 선전(沈臻) 사장은 “기업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 공업원구가 혜택을 주고 있다”며 “기업은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고 돈 버는 데만 집중하면 된다”고 말했다.

관료주의 타성에 젖어 있던 사회주의 국가의 공무원들을 ‘서비스맨’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기업 유치에 공을 세우거나 서비스 실적이 좋다고 해서 인센티브를 지급하지는 않는다고 현지 공무원들은 전했다.

장 부총재는 “공무원이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싱가포르에서 1∼3달씩 교육받은 것이 큰 효과를 봤다”며 “특히 공무원들이 공업원구의 성장에 자부심을 가진 것이 자발적으로 일하게 만드는 힘이 됐다”고 강조했다.

쑤저우=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왕진화 쑤저우 공업원구委 서기

“외자유치 위해 주말 반납…절박하지 않으면 성공못해”▼

“한번 마음먹은 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해내는 지도자입니다.”

중국 쑤저우 공업원구의 공무원들과 기업 관계자들이 가장 경외(敬畏)하는 인물은 바로 공업원구 개발의 전권을 쥐고 있는 왕진화(王金華·사진) 공업원구 위원회 서기(書記)다.

중국 공산당 쑤저우 시 위원회 부서기이기도 한 그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공업원구 관리위원회와 CSSD 등을 지휘하고 있었다. 이곳 공무원들이 왕 서기 앞에서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 다른 나라에서 취재하러 간 기자의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렇다고 그가 단순히 군림하는 리더만은 아니었다. 외국 기업의 유치를 위해 직접 해외를 오가며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세일즈 활동을 펼쳐 왔다. 쑤저우 공업원구의 한 호텔 식당에서 만난 그는 “기업 CEO들과 서로 신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외자유치로 연결됐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 덕에 그가 부임한 2000년 이후 이곳 공업원구의 외자유치 실적은 연평균 20% 가까이 늘었다. 공업원구를 단순한 기업단지가 아닌 문화, 예술, 레저가 어우러진 신개념의 미래 혁신도시로 기획한 주인공도 바로 왕 서기다.

그는 스스로 “일에 미쳐 살고 있다”고 고백했다.

“토요일은 절대 안 쉬고, 일요일은 쉬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했고, “골프는 시간이 없어서 못 친다”고 말했다.

기자가 “한국의 외자유치 전략에 대해 조언을 구하자 그는 뼈 있는 답변을 내놨다.

“중국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에 있지만 한국은 이미 많은 것을 이뤘습니다. 아마 중국의 공무원이 한국 공무원보다 더 절박한 심정으로 일하고 있을 겁니다. 중국 공무원은 자신을 희생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절박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쑤저우=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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