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대변인 얘기가 아니다. 일선 군부대 상황은 더더욱 아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정보통신부 11층 통신위원회 심판정.
SK텔레콤 영업담당 K 상무는 휴대전화 마케팅 현장을 ‘전쟁터’로 비유했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불리는 이 회사는 불법 보조금을 뿌린 혐의로 심판정에 불려 왔다.
K 상무는 “우리 보고 손을 놓고 있으라는 건 마치 남한이 대전까지 밀린 상황에서 북한과 그대로 휴전하라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보조금 지급이 고육책(苦肉策)임을 역설했다.
그의 항변은 다른 이동통신업체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쪽에서 먼저 싸움을 걸어 왔으니 맞불을 놓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통신위원들은 이날 이동통신 4개사에 대해 사상 최대인 732억 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3월 27일부터 이통사들은 회사 약관에 정한 만큼 보조금을 줄 수 있지만 한도를 넘는 보조금은 불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보다 싼값에 물건을 사려는 소비자 행동을 정부가 억지로 막기 어렵다는 이통사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거액의 과징금을 물게 되는 것을 뻔히 알지만 눈앞에 돈(고객)이 아른거리는데 보조금 경쟁을 마다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조금 경쟁을 소비자와 경쟁회사 탓으로 돌린 SK텔레콤이 정작 소비자 피해보상에는 인색하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회사는 최근 회사 장비에 결함이 생겨 수도권과 대구 광주 등에서 많은 고객이 문자메시지와 음성통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자 ‘약관에 따라 보상한다’고 밝혔다. 통화 불통된 시간만큼 계산해 한 사람당 108원을 요금에서 빼준다는 것이다. 보조금에는 거액의 돈을 쓰면서 소비자 불편을 보상하는 데는 ‘푼돈’만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이통사들의 죽기 아니면 살기 식 경쟁은 소비자 이익으로 이어질 것 같지만 실제는 전혀 딴판이다. 불법보조금을 뿌리면 기존 우량 고객들은 손해다. 일부 이통사는 상대적으로 싼 새 요금 상품을 신규 고객에게만 선전할 뿐 기존 고객들에겐 쉬쉬하는 변칙 영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통사 사장들의 정도(正道) 영업 다짐이 바로 엊그제였는데 아직도 좌석버스 한편엔 이통사들의 ‘야설’ 광고가 버젓이 걸려 있다.
누구나 휴대전화를 쓰는 세상. 3900만여 명의 휴대전화 고객의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간 돈이 바로 이통사들의 수익이 아니던가. 통신위도 문제가 적지 않지만 “이제는 안방전쟁에서 벗어나 해외로 나가 국가적인 먹을거리 창출에 앞장서야 한다”는 형태근 통신위 상임위원의 지적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글로벌 기업과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자신이 없다면 보조금이라는 은밀한 뒷거래를 끊고 휴대전화 요금부터 먼저 내리는 게 진정 고객을 위한 길이 아닐까. 한 해 수조 원의 순이익을 내는 이통사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이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무조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고객과 사회를 되돌아보는 경영의 지혜가 아쉽다.
최영해 경제부 차장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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