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에는 제조, 연구개발, 유통·홍보, 포장·디자인 등 4개 파트가 있다. 제품 생산과 경영 방식은 단순하다. 회사 주변 산과 마을에서 매실, 뽕잎 등 재료를 채취해 즙과 진액을 직접 짜 만든다. 휴일이고 저녁이고 무작정 발로 뛰는 방문 판매가 원칙이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1만8000원. 생계가 어려운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전부 쓰였다. 이 회사는 직원들에게 시간외수당은커녕 월급도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종업원들은 “우리 회사만 한 곳이 없다”고 자랑한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 한 시골 학교의 꿈
중부고속도로 서청주 요금소에서 1시간 이상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면 논밭 한가운데에 있는 한 고등학교와 만날 수 있다.
충북 보은군에 있는 보은정보고등학교다. 풀내음은 바로 이곳 학생들이 운영하는 ‘학생 기업’이다. 전형적 시골 학교인 이곳 학생들은 대부분 인문계 고교 진학이 어려울 정도로 성적이 부진한 저소득층 아이였다. 여느 농촌 학교처럼 학생 수는 갈수록 줄어만 갔다.
변화는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2004년 중소기업청의 ‘비즈쿨’ 사업에 참가 신청을 했다. 교내에 창업동아리를 만들면 매년 일정액의 예산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학교 김중규(60) 교장은 “도시 아이들에 비해 여러모로 견문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을 시키고 싶었다”고 했다.
○ ‘고사리 창업’ 열기
‘창업’ 열기는 금세 퍼져 나갔다. 풀내음을 비롯해 전통차를 만드는 ‘녹차향기’ 등 4개의 학생 기업이 그해에 설립됐다.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하는 학생 반장을 뽑고 관심분야에 따라 업무 파트를 나눴다.
무슨 상품을 판매할지, 어떤 판촉 기법을 쓸지 등 중요한 경영 현안은 학생들이 지도교사와 상의해 결정한다. 수익금은 비록 푼돈이지만 어려운 동료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에 쓰기로 했다.
○ ‘패자부활전’의 승리
“직접 만들고 수익을 내니까 뿌듯해요. 나중에 식품가공 쪽을 전공해 보고 싶어요.” 풀내음 CEO 이미옥(18) 양의 말이다.
인생에 별다른 꿈이 없었던 학생들이 대학 경영학과 진학, 소호 창업, 디자이너 등 그들만의 꿈을 갖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 졸기만 하던 학생들이 동아리 활동을 통해 얻은 자신감은 엄청났다.
뭔가를 만들고, 마케팅하고, 판매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 또 수익금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다는 사실에 학생들 스스로도 놀랐다고 한다.
교사들의 의지도 대단했다. 학생들에게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도 처음엔 쌀장사로 시작했다”며 자신감을 줬다.
동아리 활동이 모두 방과 후나 휴일에만 이뤄지지만 교사들은 학생들의 산교육을 위해 수당도 안 받고 일했다.
학교 측은 매달 기업인을 학교로 초청해 특강을 마련하는 한편 국내외 성공한 CEO들의 일대기를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구입해 틈틈이 수업 시간에 틀고 있다.
풀내음 지도교사 지화선(43) 씨는 “공부를 못 하는 아이들도 ‘잘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것이 ‘패자부활전의 승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했다.
보은=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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