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한미FTA를 지지하는 5가지 이유

  • 입력 2006년 7월 1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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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미국 UIP 영화 ‘다이하드’가 개봉되던 날. 서울의 극장들이 문을 닫았다. 미국 영화 직배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의 집단행동이었다. ‘한국 영화 다 죽는다’며 삭발하고 단식농성을 벌였던 영화인 중 몇 명은 극장에 뱀을 풀어 놓고 불을 지른 혐의로 감방 신세도 졌다.

그 후 한국 영화는 어떻게 됐을까. 1980년대 컬러 TV의 등장으로 고사(枯死) 직전에 있었던 한국 영화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화려하게 부활했다.

영화인들과 업계의 노력이 가장 컸겠지만 할리우드 영화 직배가 한국 영화를 죽인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영화를 만드는 촉매로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1998년 미국은 슈퍼 301조를 발동하며 한국 자동차시장을 개방하라고 압박했다. 한국은 자동차 세제(稅制)까지 바꾸며 미국의 요구를 들어줬다. 그 후 미국 자동차의 한국 진출은 여전히 부진하지만 한국 자동차는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미국은 인기 없는 자국 자동차를 몇 대라도 더 팔기 위해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 한미 FTA 협상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투자와 수출이 늘고, 일자리도 많아지리라는 정부 주장은 다소 과장된 듯하다. 이미 증권시장과 공장 설립 등에서 한국은 투자가 개방된 나라다. 미국 관세는 낮아서 FTA로 상품 수출이 크게 늘어날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의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FTA가 약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는 그 나라의 역량에 달려 있다. 설탕과 커피 생산이 주요 산업이던 멕시코를 들어 한국의 미래를 논하는 것은 기본 전제가 잘못됐다.

정치적 의도 등 다른 이유를 제외한다면 한미 FTA를 하느냐 마느냐는 현재 한국의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달린 것 같다.

한국은 이미 각 분야가 상당 수준 개방됐으며, FTA로 얻고 잃는 것을 합산하면 새로운 도전을 통해 얻을 것이 좀 더 많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정부가 충분한 연구와 여론수렴 없이 밀어붙여 반발을 초래한 원죄는 있지만 기왕 시작한 협상은 성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여건도 갖췄다.

첫째, 미국은 수출이나 제조업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아니다. 농업과 일부 서비스업을 빼면 미국의 산업은 한국과 상호보완적이어서 일본이나 중국과의 FTA보다 개방에 따른 피해 위험이 적을 것이다.

둘째, 한미 양국은 그동안 반도체 철강 쇠고기 등 다양한 통상 분야에서 분쟁을 겪으며 협상을 해 왔기 때문에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비교적 잘 안다. 투자 분야는 1998년 한미 투자협정 추진 때부터 연구했다.

셋째, 한국도 협상 경험이 꽤 있다.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도하개발어젠다까지 십수 년간 다자협상을 해 왔고, 농업 피해가 우려됐던 칠레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을 비롯해 싱가포르,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도 FTA를 맺었다.

넷째, 우리가 이대로 있고 싶어도 중국 인도 등의 추격으로 한국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작은 활로라도 보이면 뚫어야 한다.

다섯째, 한국은 개방의 파고를 이겨 내고 더 강해진 경험이 많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의 협상에서 방심하면 안 되지만 지나친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필요도 없다.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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