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고액 후원, 사업권 사활건 건설업자들 전방위 ‘보험금’

  • 입력 2006년 7월 21일 03시 00분


《5·31지방선거에 출마했던 시도지사 후보들의 후원회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한 고액 후원자(1인당 후원액이 120만 원이 넘는 후원자) 명단을 분석한 결과 직업 등 신분을 명확히 기재하지 않은 경우가 전체의 3분의 1이 넘었다. 직업 등이 파악된 고액 후원자 중에는 건설업체를 비롯한 기업체 대표가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직업란이 공란인 이유는=시도지사 후보들에 대한 전체 고액 후원 건수의 35.1%인 580건, 액수의 36.9%인 22억6075만 원은 기부자의 이름은 있으나 직업란은 공란이다. 후원자 본인이나 후보자가 아니면 후원자의 정확한 신분을 알기 힘들게 돼 있는 것.

직업란이 기재돼 있어도 ‘직장인’ ‘회사원’ 등 후원금을 받는 후보자와의 관계를 알 수 없게 돼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 직업란이 ‘주부’로 돼 있는 후원자가 낸 후원금도 1억2280만 원에 이르렀다. 신분을 가리기 위해 가족 명의로 후원금을 대신 낸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본보는 선관위에 신고된 고액 후원자 명단을 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와 일일이 대조하는 작업을 통해 직업란이 공란이거나 모호한 후원자 중 일부의 정확한 신원을 찾아냈다.

여당 후보에게 200만 원을 후원했으나 직업란에는 ‘사업’이라고 기재된 이영탁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은 “개인적 친분 때문에 기부했으며 직업란이 왜 그렇게 기재됐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정우택 충북지사 후보 등 3명에게 총 1500만 원을 후원했으나, 직업을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은 D개발의 C 사장은 “개인적 친분이 있어서 후원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정치자금법과 정치자금 사무규칙에 따르면 후보자 후원회의 회계책임자는 고액 후원자의 직업과 연락처 등을 선관위에 보고하게 돼 있다.

그러나 후원회 측은 “현실적으로 계좌 이체 등을 통해 들어온 후원금을 낸 사람의 신상명세를 파악하기가 힘들고 애써 연락을 취해도 후원자들이 자세한 직업 등을 밝히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선관위 관계자는 “기부자의 인적 사항을 공개하도록 돼 있으나 이를 어기더라도 제재 방법이 없다”며 “후원자의 직업을 구체적으로 밝히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방 건설업체가 ‘물주’(?)=전북에 기반을 둔 K산업의 경우 지방선거 투표일 직전인 5월 25, 26일 이틀에 걸쳐 직원 4명이 200만∼300만 원씩 총 1000만 원을 열린우리당 김완주 전북시장 후보에게 기부했다.

광주 지역 건설업체인 J건설은 J 회장과 J 사장이 각각 500만 원씩 모두 1000만 원을 민주당 박광태 광주시장 후보에게 기부했다.

정치자금법에 따라 법인은 후원금을 낼 수 없고 개인 후원만 가능하다. 후원금은 후보자 1인당 500만 원 이내, 최대 2000만 원까지만 가능하다.

K산업이나 J건설의 경우 회사 관계자들이 자발적으로 한 후보에게 낸 것이 우연히 겹쳤을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후원금을 회사 또는 회사 대표가 부담한 것이라면 후원금 한도(500만 원) 위반 등 위법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D건설 등 13개 계열사를 가진 광주 전남의 지역 기업인 D그룹의 H 회장은 5월 24일 열린우리당 조영택 광주시장, 서범석 전남지사 후보와 민주당 박광태 광주시장, 박준영 전남지사 후보에게 1인당 500만 원씩 총 2000만 원을 후원했다.

그룹의 주요 사업체가 있는 광주와 전남에 출마한 여당 후보와 당선 유력자에게 한도액까지 후원금을 낸 것.

박성효 한나라당 대전시장 후보는 H 건설 L 사장에게서 500만 원을 받는 등 건설업체 대표에게서 1300만 원을 후원금으로 받았다. 정우택 충북지사 후보는 L기업 J 대표이사 회장, D건설 대표, I종합건설 대표, S건설 대표 등에게서 총 3700만 원을 받았다.

항구 물류도시인 부산과 인천에서는 항만 하역업체와 수상 운송서비스 업체 대표들이 후보들에게 후원금을 내기도 했다.

기업 및 건설업체 대표들의 고액 후원금은 당선 유력자들에게 집중됐다. 기업 대표들이 낸 고액 후원금 중 65.7%(9억2240만 원), 건설업체 대표와 직원들이 낸 고액 후원금 중 71.3%(2억9200만 원)는 당선자의 후원금 계좌로 입금됐다.

정치학자들은 “건설업체 등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발주하는 관급공사 등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자치단체의 사업과 관련 있을 수 있는 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것은 합법이라고 해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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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후원금은 당선자를 알고 있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고액 후원금에 강하다?’

5·31지방선거 당시 시도지사 후보들이 받은 후원금 내용을 분석한 결과 한나라당 소속 후보 16명이 모금한 고액 후원금은 38억6929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모금 총액 61억3337만 원의 63.1%가 고액 후원금으로 채워졌다는 얘기다. 지방선거는 한나라당의 우세가 두드러졌다. 그만큼 확실한 인사 표시를 한 사람도 많았던 셈이다.

민주당은 후보들의 총후원금은 10억2461만 원에 불과했지만 그중 고액후원금이 63.8%인 6억5341만 원에 달했다. 비율로는 오히려 한나라당보다 고액 후원금이 많다.

광주와 전남 등 일부 확실한 우세지역에서 전략적 고려에 따른 후원금이 몰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열린우리당은 전체 후원금 25억9047만 원 중 고액 후원금이 14억4850만 원(55.9%)에 달했다. 한나라당에 비해 액수가 적지만 당선 가능성 있는 후보가 몇 안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민주노동당은 시도지사 당선자를 한 명도 못 냈지만 총 15억9320만 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민노당은 국회의원 수가 민주당(11명)보다 2명 적지만 후원금은 민주당보다 5억 원가량 더 많다. 하지만 고액 기부금은 6340만 원(4.0%)으로 민주당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선거 당시 고액 후원금을 가장 많이 모은 사람은 김문수 경기지사로 모두 8억9564만 원을 받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체 후원금 9억7919만 원 중 74.2%인 7억2650만 원이 고액 후원금이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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