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현대중공업은 1만 TEU(1TEU는 길이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4척을 중국 코스코사(社)에서 수주했다.
국내 조선(造船)업계는 ‘꿈의 컨테이너선’인 1만 TEU급 수주에 환호했다. 현대중공업 측은 “세계 컨테이너선 시장의 대형화, 고속화를 선도하고 있음을 입증했을 뿐 아니라 고부가가치선에 대한 기술력과 선박 건조능력을 높이 평가받았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얼마 뒤 중국 조선업체인 낙스 역시 코스코에서 1만 TEU급 컨테이너선 4척을 수주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낙스가 수주한 선박은 길이(348.5m)와 폭(45.6m)은 물론 최고 속도(시속 48km)까지 현대중공업이 수주한 것과 똑같았다.
#2 그들의 무서운 질주가 시작됐다
영국의 조선 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은 중국 다롄(大連)선박중공이 올해 6월 말 현재 수주잔량이 284만 CGT(표준화물선 환산 t수)로 세계 5위를 차지했다고 24일 발표했다. 중국 조선업체가 세계 5위에 오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와이가오차오(外高橋)조선도 184만 CGT로 10위를 차지했다.
국내 조선업체 관계자들은 “중국 조선소가 세계 시장에 위용을 본격 드러내는 ‘서막’이 올랐다”고 말했다.
중국 조선업체가 밀려오고 있다.
중국은 ‘자국 내 해운 수송 물량은 자국 조선소에서 만든 배로 해결한다’는 이른바 ‘국수국조(國輸國造)’ 정책에 따라 탄탄한 국내 물량을 기반으로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1990년 2.5%에 불과하던 중국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6.6%로 크게 뛰었다.
이미 중국 정부는 2015년 조선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오른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 대규모 조선소를 본격 건설하며 한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 합병으로 덩치 키운 뒤 대형 조선소 건설
중국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조선업체 키우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전체 물량에서 자국 내 선박 수요가 30∼40%에 달해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점도 유리하다. 한국 조선업체의 국내 물량은 5%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는 일정 기준을 정해 놓고 중국 선주가 중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할 경우 선박 가격의 17%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중국 내 조선업체는 70%가량이 국영으로, 중국은 최근까지 중소 조선소에 대한 합병 작업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는 국가 차원에서 대규모 조선기지 3개를 건설하고 있다.
중복 투자를 방지하기 위해 기지별로 컨테이너선, 액화석유가스(LPG)운반선, 해양 플랫폼 등 주력 업종을 나눠 체계적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선박 건조능력은 2015년 1500만 GT(총t수)로 지난해에 비해 138%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기술 격차 확보 관건
물론 1위 자리를 지키는 한국의 입지는 아직 탄탄하다.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수주 잔량에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업체가 1∼4위를 차지했다. 10위 안에 든 한국 업체는 모두 7개로 여전히 선두를 달리고 있다.
원유시추선이나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 대한 기술력도 월등히 앞선다.
실제 전문가들은 중국이 계획대로 2015년 세계 1위에 오를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한다. 신영증권 조용준 리서치센터장은 “중국은 설계력이 부족하고 기자재율의 국산화가 낮은 점이 개선 과제로 꼽힌다”고 말했다.
하지만 2020년 이후에는 중국과 한국의 경쟁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아직 기술이나 물량 면에서는 한국이 압도적인 우위라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물량을 앞세워 추격하는 중국에 위협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산업연구원 홍성인 연구위원은 “일반 상선을 꾸준히 확보하되 원유시추선이나 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의 수주를 강화해야 한다”며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장기적으로 기술 격차를 더 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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