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뉴실버세대는 전통적인 노인상(像)과 거리가 있다. 이들에게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기대했다간 오산이다.
이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가 강하다. 삶을 적극적으로 즐기려는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조사 대상 500명 가운데 “기회가 주어지면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응답이 48.4%에 이른다.
32년 6개월의 공무원 생활을 접고 2002년 퇴직한 이윤식(62·경기 성남시 분당구) 씨는 지금 한 섬유업체에서 영업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연금이 매달 200만 원 정도 나오지만 다시 일을 시작했다. 돈을 더 모아야 할 이유가 있어서다.
“필리핀에서 6개월, 말레이시아에서 6개월, 몽골에 가서 6개월, 이렇게 세계 유람을 하고 싶어요. 젊었을 때는 먹고사느라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 세상을 한번 보고 싶은 거죠.”
그는 5년 정도 돈을 모아 두 딸을 시집보낸 후 아내와 꼭 떠나겠다고 말한다. 그때를 위해 매일 2시간씩 트레드밀(러닝머신)에서 달리고 근력 운동도 하며 몸을 ‘만들고’ 있다. 낮에는 일하느라 바쁘고 틈틈이 운동까지 해서 몸이 고달플 만도 한데 그는 “꿈이 있어 하나도 안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경희 고령화정책팀장은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최근 노인들의 다양한 삶을 들여다보면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젊은 세대의 선입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조사 대상 4명 가운데 1명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다(25.2%)고 응답했다.
또 절반(47.2%) 정도는 나이가 들었어도 ‘노인용’이라고 알려진 제품은 구매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 뒤처지는 데 대한 불안감도
건축자재 도매상을 운영하는 이진승(가명·63) 씨.
“예전에 제가 아들과 딸에게 운전을 가르쳤습니다. 도로를 달리면서 ‘인마, 그것도 못 하냐’고 핀잔을 줬죠. 그런데 아들 녀석이 컴퓨터를 몇 번 가르쳐 주더니 ‘아빠, 그것도 못 해’ 하는 겁니다. ‘몇 번이나 가르쳐 주고 그런 소리를 하냐’고 했더니 ‘아빠 예전에 운전도 제대로 안 가르쳐 주고 그것도 못 하냐고 했잖아. 다 마찬가지야’라는 답이 돌아오더군요.”
이 씨는 “아직도 살아야 할 날이 많이 남았는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못 보내면 살기 힘들어지고 인터넷 모르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 자식이 내 노후를 책임져 주지도 않을 것 같아 나름대로 적응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뉴실버세대가 늘 희망적이고 밝은 생각만 하는 건 아니다. 뒤처지는 데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자신의 세대가 현재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세대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27.2%에 그쳤다.
반면 사회 변화 속도가 빨라서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에 대해 불안감이 든다는 응답은 44.4%에 이른다.
사회가 지나치게 젊은 세대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도 73.2%에 이르렀다.
○ 사회 자원으로 활용해야
뉴실버세대 자신이 바라는 것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틈이 있다.
사회가 뉴실버세대의 에너지를 제대로 활용할 환경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실버세대가 새로 나타나고 있지만 실제 사회에서 노인의 역할 모델이 없다는 것이다.
몇 년간 컴퓨터를 배워 도사가 됐더라도 컴퓨터 실력을 쓸 데가 마땅찮다. 동네 복지관이나 노인정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정도다.
이번 조사에서 시간적 여유(61.0%)와 건강의 여유(41.2%)가 있다는 응답은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경제적인 면은 별개였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36.0%)는 응답이 여유가 있다(27.4%)는 응답보다 상대적으로 많았다.
부산 노인생활과학연구소 한동희 소장은 “‘뉴실버’들은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에 순응하다가 자신들만의 특징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의 꿈틀거리는 욕구를 사회의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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