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10시 30분(한국 시간). 소말리아 주변 해역에서 납치됐던 제628 동원호 최성식(39) 선장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대기 중이던 동원수산 강오순 상무에게 전화를 걸어 억류돼 있던 소말리아 오비아 항에서 출발한다는 소식을 알려 왔다.
강 상무는 “최 선장의 목소리가 다소 지친 기색이었지만 건강하다는 소식에 마음을 놓았다”고 전했다.
선원들이 무사히 풀려났다는 소식에 하루가 1년 같았던 가족들도 비로소 안도했다.
“아직 장가도 못 간 동생이 못 돌아오면 어떻게 할지…. 중풍을 앓고 계신 어머니께는 충격받으실까봐 차마 동생 소식을 알리지도 못했어요. 이젠 살 것 같습니다.”
동원호 기관장 황상기(42) 씨의 형 황용기(55·충북 제천시) 씨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동원호의 한국인 선원 8명이 억류됐던 117일간은 가족들에게도 생지옥의 나날이었다.
1항사 김진국(39) 씨의 형 김진화(47·강원 화천군) 씨는 이날 동원호가 공해로 출발한 직후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내 눈으로 봐야 살아오는 줄 알겠다”며 “오늘 오전에 석방협상이 타결됐지만 일정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회사 측 연락을 받아 막판까지 가슴을 졸였다”고 말했다.
정작 선원들의 무사귀환 소식을 알린 최 선장의 부산 남구 용호3동 집은 이날 내내 문이 굳게 닫힌 채 비어 있었으며 부인 조미선(37) 씨는 휴대전화도 받지 않았다.
이웃 주민 김모(43·여) 씨는 “불공을 드리러 절에 갔을 것”이라며 “배가 납치된 직후부터 남편의 무사귀환을 빌기 위해 근처 절을 찾아 불공을 드린 것이 석방에 큰 힘이 된 것 같다”고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이웃들은 부인 조 씨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과 세 살 된 아들에게 아빠의 피랍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강인하게 버텨왔다고 말했다.
조리사 이기만(40) 씨의 어머니 김도순(66·전남 순천시 서면) 씨도 “말할 수 없이 좋고 가슴이 떨린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씨는 “엊그제 TV에서 아들 모습을 잠깐 봤는데 얼굴이 너무 타서 어미인 나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며 “그날 밤 고생하는 아들 생각에 한숨도 못 잤다”고 그간 애태웠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선원 강동현(27) 씨의 아버지 강대승(57·제주 서귀포시) 씨는 “매일 협상 진행과정을 알려줘 가족들을 안심시킨 회사와 함께 마음고생을 해 준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순천=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한밤대기 직원들 “와!”
30일 밤 서울 강남구 역삼동 동원수산 본사. ‘동원호 석방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초조히 결과를 기다리던 임직원 11명은 일제히 “와!” 하며 환호성을 올렸다.
그동안 연일 비상근무를 해 온 이 회사 조원희 상임감사는 “올해 4월 동원호가 납치된 이후 직원들이 잠도 못 자고 석방되기만 기다렸다”면서 “오늘도 석방이 생각보다 늦어져 막판까지 가슴을 졸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날 오후 11시 45분경 이 회사 송장식 사장은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원호 선원들이 석방돼 공해로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공식발표했다.
송 사장은 “협상 타결 후 석방까지 시간이 걸린 것은 현지의 기상 악화” 때문이라며 “선원들의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석방 조건으로 80만 달러를 줬다는 일부 외신 보도에 대해서는 “국제관례상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동원수산 측은 이날 오후까지만 해도 “협상 팀이 모두 현지에 가 있어 확인이 잘 안 되는 데다 선박이 안전한 공해로 빠져나올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특히 동원호 최성식 선장이 회사 측과 오후 6시경 마지막으로 통화한 후 한동안 연락이 두절되자 긴장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외교통상부도 이날 오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협상팀과 긴밀히 연락을 취하며 동원호에서 선원들을 억류했던 무장단체원 15명이 모두 내렸다는 소식이 오길 애타게 기다렸다.
외교부는 이날 오후 10시 반 무장단체원들을 태운 보트가 동원호를 떠났다는 정보를 접한 뒤에도 동원호가 소말리아 영해를 벗어나 미국 군함의 보호를 받기 전까지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무장단체가 한국 정부의 반응에 불만을 품고 동원호를 다시 억류할 가능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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