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부산 정관신도시에서 분양한 아파트 계약률이 10%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김 이사는 “아파트 분양만 10년째 하고 있는데 최근 불황은 견뎌 내기 어려울 정도”라며 “투자비용이나 회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건설업체 B사의 이모 부장은 자신이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수도권의 한 지하철 공사가 걱정이다. 정부가 발주한 이 공사에 투입될 예산은 200억 원이지만 아직까지 40억 원만 배정되는 데 그쳐 일단 회사 돈으로 ‘외상 공사’를 하고 현장 인원을 30%가량 줄이는 ‘편법’을 사용하고 있다. 건설업체 임직원이라면 대부분 요즘 두 사람과 비슷한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 무너지는 건설 경기
건설 경기 침체의 파장은 ‘오일 달러’로 촉발된 중동발 특수(特需)를 누리고 있는 일부 대형 건설업체를 제외하고는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아파트 계약률은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지고 있다.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를 제외하고는 정관신도시, 경기 화성시 향남신도시 등 대규모 택지에서 나오는 아파트 계약률은 10∼30% 선에 머무르고 있다.
부산을 기반으로 한 중견업체 C사 관계자는 “올해 초만 해도 아파트 분양가가 높아 계약률이 낮아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지만 3월부터는 분양가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팔리는 ‘마이너스 프리미엄’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권홍사 회장은 “충북 지방의 350개 건설업체 중 올해 상반기에 1건 이상 공사를 수주한 곳은 45%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사 수주가 가능했던 공공 건설 부문도 관련 예산 집행이 지연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건설협회는 도로 공사 등 현재 전국 638개 사회간접자본(SOC) 공사현장 중 53.9%인 344개 현장이 ‘외상 공사’, 현장 인원 축소 등 편법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 중견 건설업체는 수도권 등지에서 진행 중인 70개의 공사현장 중 88.6%인 62개 현장을 파행 운영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부실 공사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파트 등 건물을 덜 짓다 보니 시멘트 등 관련 업종으로도 불똥이 튀고 있다.
국내 1위의 시멘트 생산 업체인 유진그룹은 최근 출하량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 회사 구동진 과장은 “건설 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다 보니 웬만해서는 줄이지 않던 시멘트 생산량을 조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경제 관료와 건설업계 임직원들 사이에서 “물난리를 겪은 분들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만 수해복구 사업이라도 없었다면 더 큰일 날 뻔 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건설 경기 하락은 지난해 8·31 종합부동산 대책 이후 본격화된 규제책으로 시장 수요가 감소한 데 따른 영향이 가장 크다는 데 별 이견은 없다. 재정경제부 박병원 제1차관도 최근 건설 경기 하락에 대해 “부동산 대책에 따른 ‘정상화’ 과정으로 본다”며 그 영향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 대신 정부는 추가 건설 경기 하락을 우려해 올해 하반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조 원가량 늘어난 11조1000억 원을 공공 부문 건설 투자에 집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미 편성된 예산을 집행하는 것인 데다 정부 발주공사가 갈수록 대형업체에 유리한 시스템으로 되면서 경기 악화로 큰 타격을 받는 1만여 개의 중견업체의 사정은 별로 나아질 게 없는 실정이다. 더구나 공공 발주공사의 상당수는 토목공사라서 주택 공사를 위주로 하는 대부분의 중견 업체들에는 ‘남의 떡’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대형업체들의 공공 공사 수주 점유율은 늘고 있지만 중견업체들은 줄어들고 있다.
건설교통부와 대한건설협회 등에 따르면 대우건설 현대건설 등 시공능력순위 1∼10위 업체들이 전체 공공 공사 수주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04년 15.3%에서 2005년에는 18.5%로 3.2%포인트 늘었다. 11∼30위권 업체도 12.4%에서 16.3%로 3.9%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301∼1000위 업체들은 17.4%에서 15.3%로 줄었다. 특히 주로 하도급을 담당하는 1001위 이하 업체들은 29.2%에서 23.0%로 6.2%포인트 급감해 규모가 작은 건설업체일수록 더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정부, 고민은 되지만…
정부 일각에서도 건설 경기를 이대로 방치할 수만 없다는 의견이 비공식적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 정권에서는 부동산정책이 지닌 상징성 때문에 공론화로 이어지지 못한다.
재경부의 한 당국자는 “건설업이 고용 시장과 특히 지방의 체감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지만 정권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한 부동산 대책의 방향을 틀 수는 없어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일단 정치권에 기대를 걸고 있다.
건설업체 사장단은 지난달 19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을 만나 “공공 공사 발주 물량 감소, 강력한 부동산 규제 정책 등으로 건설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건설업체들의 어려움이 크다”며 지원책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소속 이호웅 건교위원장은 “건설업계의 불합리한 제도는 개선하되 필요한 수준의 경기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는 “섣부른 건설 경기 부양은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는 인식이 우세한 실정이어서 당분간 당정 간에 ‘줄다리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