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서 김 의장은 “기업을 경영하면서 창조적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얻은 성과를 보호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기업의 경영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기업가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기업가 정신 회복’을 요청했다.
이에 앞서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지난달 31일 대한상공회의소를 방문해 간담회를 했다. 이달 3일과 9일에는 각각 중소기업중앙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과도 만난다.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경제 인식에 의미 있는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당 지도부는 ‘좌파적’이란 말까지 듣던 경직된 경제관과 기업관에서 벗어나 시장친화적, 기업친화적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경제계와의 접촉 빈도를 늘리고 있다. 김 의장은 기업의 투자 확대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로 ‘시장친화적 뉴딜 구상’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부는 ‘재벌의 폐해’를 집중 거론하면서 규제 유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서 당정 간에 미묘한 갈등도 나타나고 있다.
또 여당 내의 이른바 ‘개혁파 의원’ 가운데 일부 인사도 지도부의 최근 행보를 “재벌 편들기”라며 반발하고 있어 ‘실사구시(實事求是) 정당’으로의 변신이 성공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 여당 지도부, “이번에는 달라졌다”
여당 내에서 시장친화적 경제정책 추진을 주도하는 것은 강봉균 정책위 의장과 이계안 의장비서실장 등 경제 관료나 기업인 출신 인사다. 이들은 국정운영의 기조를 실용과 민생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과거 분배 중심의 경제정책에 더 무게를 둔 듯이 보이던 김 의장도 5월 지방선거의 참패를 불러온 결정적 원인이 ‘경제 실정(失政)’과 이에 따른 민생의 어려움이라는 점을 인식한 듯 ‘서민경제 회복’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김 의장은 지난달 30일 기자 간담회에서 “기업인 사면,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경영권 보호 등 경제계의 요구사항을 적극 실행할 준비가 돼 있다”며 “기업은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가시적 조치를 결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한길 원내대표도 2일 간담회에서 “경제 회복의 핵심은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달려 있다”며 ‘친(親)기업적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여당은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 투자를 막고 있는 각종 규제를 최대한 없앤다는 계획이다. 또 반발이 큰 부동산 관련 세금 부담도 줄여 나갈 방침이다.
○ 정부와 당내 ‘개혁파’의 반발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1일 제주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계열사 간 순환출자로 연결된 재벌의 지배구조 왜곡과 이로 인한 폐해는 사후 규제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순환출자금지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여당이 시장친화적 정책 마련을 위해 경제인과 만나고 있는 사이 ‘순환출자금지’라는 초강경 규제 카드를 꺼낸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달 30일에는 “재벌 총수들이 소유 지분의 6.71배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이날은 김 의장이 ‘뉴딜 구상’을 처음 공개한 날이다.
재정경제부도 여당이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적대적 인수합병(M&A) 시 경영권 방어 대책’에 대해 부정적이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재계에서 요구하는 차등 의결권이나 황금주 제도 등을 도입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며 “지금은 이와 관련한 대책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여당 내 반발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이른바 ‘친노(親盧) 개혁파’로 분류되는 정청래 의원은 2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뉴딜 구상’은 서민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재벌 살리기”라며 “재계가 일자리 창출에 나선다는 이행 보장도 없이 1%의 지분으로 20∼30% 의결권을 행사하는 재벌에 특혜를 주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단체 임원은 “여당이 뒤늦게나마 ‘기업 규제 완화→투자 활성화→일자리 창출→양극화 해소 및 경제 회복’이라는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깨달은 것은 크게 환영한다”면서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의 반대가 예상되는 만큼 여당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번에도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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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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