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은행장실에 들어서면 서예가 강권진씨가 열림체로 쓴 ‘처음처럼’이라는 글씨가 눈길을 끈다. 열림체는 획마다 사람 모양이 들어가는 독특한 글씨체. 바로 옆방 접견실에는 신영복 성공회대 전 교수가 협동체로 쓴 ‘처음처럼’이 걸려있다.
두산주류BG의 ‘처음처럼’이 히트하면서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내방객들로부터 신한은행과 두산의 소주가 어떤 계약을 맺었느냐는 질문을 곧잘 받는다. ‘처음처럼’은 젊은 시절부터 신상훈 행장의 좌우명. 신 행장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로얄티를 받아야 하는 쪽은 자신이라고 말한다.
신 행장은 사원들에게 임명장을 줄 때도 ‘처음처럼’을 강조한다. 인사발령을 받은 사람들은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초심(初心)은 퇴색하고 가슴 뛰던 처음의 기억은 먼지 낀 과거로 편입된다.
“대개 사람들이 어떤 직책을 받을 때는 무척 고마워하다가 임기가 돼 그만둘 때는 자기 공로를 인정 안 해주고 나가라고 한다고 해서 서운해 하죠. 받을 때나 나갈 때나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임해야죠. 처음에 임명장을 받들 때의 자세를 항상 유지하자는 것이죠.”
그는 좌우명 ‘처음처럼’을 강권진씨의 글씨로 받아 어디를 가든 사무실에 걸어놓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친지로부터 신영복 교수가 쓴 ‘처음처럼’을 선물받았다. 신 교수가 ‘처음처럼’ 글씨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처음처럼’은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가 20여 년 간 투옥생활을 하면서 지은 시(詩)의 제목이다. 두산은 ‘숙취가 없어 그 다음날도 처음처럼 유지된다’는 의미로 ‘처음처럼’을 브랜드로 정했다. 두산은 신 교수의 서체를 그대로 사용하는 조건으로 사용료를 지불하려고 했으나 신 교수가 사양해 개인적 보상을 하지 않고 신 교수가 재직중이던 성공회대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 1억원을 내놓았다.
‘신동아’와 인터뷰 중인 신상훈 신한은행장(오른쪽)
1960년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장기 복역한 신 교수는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더불어 숲'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른바 '협동체' '연대체'로 불리는 신교수의 글씨는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대중음식점에도 흔하게 걸려 있다.
신 교수는 8월 성공회대를 정년퇴직했다. 그는 대표적인 진보적 학자이다. 그래서 시중에서는 농담으로 좌파는 ‘처음처럼’을 마시고 우파는 ‘참이슬’을 마신다는 말도 있다.
두산은 신한은행 본점 직원 1500명에게 ‘처음처럼’ 미니어처 두병씩을 제공했다. 신행장의 좌우명을 브랜드로 가져간데 대한 보상치고는 좀 작은 편인가.
글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사진 = 지재만 기자 jikija@donga.com
*이 기사는 시사월간지 신동아 7월호에 실린 것을 요약한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지금 발매중인 신동아 7월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황호택 논설위원이 신동아에서 만난 '생각의 리더 10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졌습니다.
가수 조용필, 탤런트 최진실, 대법원장 이용훈, 연극인 윤석화, 법무부 장관 천정배, 만화가 허영만, 한승헌 변호사, 작가 김주영, 신용하 백범학술원 원장,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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