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새콤한 포도향이 코끝에 닿았다. 유기농 포도를 재배하는 이 농가의 포도밭에는 거미, 메뚜기 등 곤충이 유달리 많이 눈에 띄었다.
농장주 신동현(44) 씨는 “8년째 농약을 치지 않아 벌레가 많다”며 “땅을 기름지게 하는 지렁이도 덩달아 많아졌다”고 말했다.
부모에게서 포도밭을 물려받아 지금까지 평생을 포도 재배만 해온 신 씨는 늘 판로를 걱정하며 살아왔다.
‘제값에 다 팔 수 있을까?’
일부는 늘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팔아야만 했다. 3년 전 국가의 유기농 인증을 받은 뒤엔 오히려 더 힘들었다. 가격은 비싼 데다 유기농이라는 걸 손님들이 쉽게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약 5t의 생산량 모두 충북 청원군 오창면 오창농협 친환경물류센터를 통해 SK그룹 계열 화학업체인 SK케미칼에 납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SK케미칼은 이 포도를 SK그룹 임직원 등에게 판다.
신 씨는 “지난해보다 수입이 20% 정도는 늘어날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대기업과 농촌의 ‘상생(相生)’이 이곳에서 무르익고 있었다. SK케미칼과 충북 청원군 오창농협은 지난해 3월부터 손잡고 유기농 사업을 하고 있다.
○ 유기농과 대기업의 품질관리가 만났다
오창농협 친환경 물류센터는 지난해 5월 SK케미칼의 품질관리 노하우를 도입하면서 첨단 유통 시스템을 갖춘 선진 물류센터로 거듭났다.
예를 들어 입고되는 모든 농산물에는 배송 전까지 7개의 바코드를 찍어 언제, 어느 농가에서 생산한 것인지 추적할 수 있다.
SK케미칼 정택환 유기농팀장은 “뒤늦게 농산물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돼도 생산 농가와 유통 과정을 추적해 소비자에게 배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창농협 김창한(49) 조합장은 “그동안 소비자는 진짜 유기 농산물인지 믿을 수 없어 유기농을 외면해 온 게 사실”이라며 “SK케미칼의 검증과 관리 시스템 덕에 소비자를 안심시킬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토마토를 납품하는 강호대(44) 씨는 “지난해까지도 재배 농산물의 5% 이상을 헐값에 인근 시장에 넘겨야 했다”며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한 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그 덕분에 유기농 재배 농가도 늘고 있다.
오창농협의 3년 이상 농약을 쓰지 않은 무농약 인증 농가는 2004년 말 280가구에서 올 연말에는 380여 가구로 늘어날 전망이다.
○ SK, 사회 공헌과 신사업 연계
당초 SK케미칼의 유기농 사업은 ‘농촌 지원’이라는 사회 공헌 활동에서 나온 아이디어. 하지만 지금은 유기농이 새로운 사업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국내 유기농 시장은 2004년 4000억 원에서 올해는 7000억 원으로 규모가 커질 전망이다.
SK케미칼은 현재 제약 사업부문의 핵심 고객 850여 명에게 유기 농산물을 보내는 등 유기 농산물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정도다.
하지만 내년 말부터는 일반 소비자에게도 유기 농산물을 본격적으로 판매할 생각이다.
또 원하는 SK그룹 임직원에게도 유기 농산물을 싼값에 공급하고 있다. 회사가 절반을 부담한다.
유기 농산물을 사 먹는 SK그룹 임직원은 지난해 2000여 명에서 올해 5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창농협에서 사들인 농산물 규모도 지난해 6억 원에서 올해 42억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청주·청원=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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