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어젯밤 인터넷 화상통화를 했는데 100일 갓 넘은 둘째까지 아이 둘 키우느라 많이 힘들어 보이더라고요….”(〃박성용 대리·33)》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외곽 해변에 자리 잡은 제벨알리 복합화력발전소 공사 현장. 사무실 밖은 대낮 기온이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열사(熱沙)의 땅이다.
이곳에 두 명의 한국 사나이가 나란히 섰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고도 성장기를 헤쳐 온 김 위원과 외환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한 박 대리. 본보 취재팀이 최근 화상통화로 만난 이들은 오늘도 머나먼 이역에서 한국의 미래를 건 전투를 함께 치르고 있었다.
예전의 활기와 역동성을 잃고 비틀거리는 한국 경제를 다시 이끌어 갈 에너지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전문가들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한 제도개선과 함께 아버지 세대의 도전 정신과 경험, 아들딸 세대의 창의성과 ‘끼’를 결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발전시설 시운전 전문가인 김 위원은 지난해 3월 이란 현장근무를 끝으로 은퇴했다. 그러나 중동 플랜트 공사가 폭주하면서 다시 회사의 부름을 받았다.
“또 나가겠다고 했더니 아들딸이 펄쩍 뛰어. ‘환갑도 훨씬 지난 분이 어딜 가시느냐’고…. 하지만 우린 그렇게 못 해. 해외 나가서 돈 쓰는 사람이 있으면 벌어들이는 사람도 있어야지.”(김 위원)
“저는 김 위원님 연세까지 현장을 지킬 자신은 없어요. 중국인 근로자들이 땡볕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일하는 걸 보며 선배들이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잘 알지만요.”(박 대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를 졸업한 박 대리는 2000년 입사해 같은 부서에 배치된 동기 16명 중 혼자 회사에 남았다. 나머지는 ‘인생의 절반을 해외 공사판에서 보내긴 싫다’며 떠났다.
“하긴 다섯 살짜리 외손자가 영리해 보여서 ‘과학자 만들자’고 했더니 딸과 사위가 ‘절대 이공계는 안 보낸다’고 해. 요즘 젊은이들은 다들 공무원, 선생님만 하고 싶어 한다며?”(김 위원)
“편한 일만 찾으려고 그러는 건 아닐 겁니다. 인생을 걸고 도전할 만한 일자리가 줄어든 거죠.”(박 대리)
1990년대 초 현대건설은 중동 공사현장마다 평균 1000∼2000명의 한국 직원을 내보냈다. 지금은 100명이 채 안 된다.
“젊은이들은 우리보다 조건이 좋잖아. 영어도 잘하고 아이디어도 많아. 하지만 어려운 일에 겁 없이 덤벼드는 정신이 부족한 것 같아.”(김 위원)
“저희 가슴속에도 열정은 있습니다. 또 ‘맨땅’에서 시작한 선배들과 달리 저희는 선배들 경험과 ‘노하우’ 위에서 출발하잖아요.”(박 대리)
2008년 공사가 끝나면 귀국할 예정인 김 위원이 말을 맺었다.
“요즘 돌아가신 ‘왕 회장’(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이 자주 생각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투자하는 기업가가 나오고 이들을 존중해줘야 해, 그래야 후배들도 나처럼 뛸 기회가 있을 것 아니겠어….”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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